[아주로앤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타인의 일상 사진이나 영상을 음란물로 합성·편집하는 '딥페이크(deepfake)'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서울대 n번방 사건' 공범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며 엄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유랑 부장판사는 28일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편집·반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공범 A씨(28)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의 정보통신망을 통한 공개·고지, 5년간의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허위 영상물 내용은 일반인 입장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역겨운 내용"이라며 "익명성과 편의성을 악용해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도구화하며 피해자의 인격을 몰살해 엄벌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A씨는 서울대 출신인 B씨에게 온라인 메신저로 연락해 함께 2020년 7월부터 지난 4월까지 이 대학 동문 등 지인인 여성 수십 명을 대상으로 허위 음란물 400여개를 제작하고 1700개를 텔레그램 등을 통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여성 61명이며, 이 중 서울대 동문은 12명이다.
'서울대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한 이 사건의 주범 B씨의 속행 공판은 다음달 예정됐다.
이날 A씨에 대한 유죄 선고는 딥페이크 음란물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법원이 엄벌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는 지난 2020년 6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딥페이크 처벌법'이라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제14조의 2를 개정했다. 하지만 이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한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 법정에서는 범죄 전력, 연령, 반성 여부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피해의 심각성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는 비판이 많았다.
또 법관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 기준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 양형위원회는 지난 2020년 기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 허위영상물(딥페이크 영상물 등)의 반포 범죄와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 범죄 등을 추가했다. 하지만 허위영상물을 반포했을 경우 기본 징역 6개월~1년6개월, 가중돼도 10개월~2년6개월에 그친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공범에 대한 징역5년형은 '강력한 처벌'로 평가할 만하다. 피해자 1명을 대리하는 김민아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채)는 선고 후 "검찰 구형(징역10년)보다 많이 깎인 점은 아쉽지만 일상에서 SNS를 이용해 서로 안부를 묻는 게 범죄에 이용됐다는 점 등을 재판부가 양형에 많이 참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범죄 근절을 위해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는 이날 딥페이크 관련 입법 공백을 보완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변은 성명을 통해 "성폭력처벌법의 경우 반포 목적 등을 요구하고 있어 배포할 목적이 없는 합성·제작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며 "피해 영상물의 사적 소지·구입·저장·시청 등의 행위에 대해서도 규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처벌 수위가 높지만 아동·청소년이 아닌 성인 여성에 대한 착취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정보통신망법은 음란한 영상, 음향을 규제하고 있지만 처벌 수위가 약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 영상에 대해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것처럼 성인 대상 음란 영상에 대한 위장수사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날 국회 여성가조위원회는 법률 개정 등 성범죄 대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달 4일 긴급 현안 질의를 열기로 한 것도 이런 사회적 요구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이인선 여가위원장은 "현재 법령은 새로운 형태의 범죄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며 "범죄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범죄 피해자가 여성이나 미성년자인 경우에 신속하고 체계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딥페이크 기술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여성과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해외에 기반을 두고 보안성이 높아 디지털성범죄의 주요 경로로 쓰이는 텔레그램에 대한 규제 또는 협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텔레그램을 비롯해 페이스북·엑스(X)·인스타그램·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과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방심위는 이날 긴급 전체 회의를 소집하고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는 물론 글로벌 사업자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신속한 영상 삭제 차단 조치와 자율적인 규제를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딥페이크 영상물로 인한 피해자 10명 중 3명은 미성년자라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로부터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36.9%(288명)는 10대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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