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분위기 맞춰줬더니, 어디 검사 어깨에 손을 대고 x랄이야. 이 개새x가."
2012년에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곽도원이 연기한 검사 조범석의 대사다. 상사가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석하게 된 피의자 최익현(최민식 분)이 화장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한 척을 하자, 조 검사는 최익현의 중요 부위를 발로 차는 등 즉각 폭력을 행사하며 이같이 말한다.
"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난 니가 깡패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어 이 새x. 넌 내가 깡패라고 하면 그냥 깡패야 이 새x." 당시 이 장면은 1980년대 조폭을 때려잡던 검사를 영화 속에서 다소 거친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이는 검찰의 법 집행 방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10년간 영화 속에서 검찰은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2010년 개봉한 <부당거래>부터 2015년 <내부자들>, 2016년 <검사외전>과 <아수라>, 그리고 2017년 <더 킹>까지. 영화 속에서 검찰의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이 담긴 비위(非違)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묘사됐다.
영화가 대중의 인식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내부자들>은 지난해 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이라는 제목으로 3시간짜리 감독판을 개봉하면서 누적 10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 수를 모았다. <검사외전>도 개봉 2일 만에 역대 최단 속도로 100만명 고지를 넘기고 970만명의 관객 수를 모았다. 관련 영화가 유명세를 타자 명대사를 따라 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인식이 오랫동안 쌓여 검찰이 개혁의 대상으로 몰렸다는 내부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하는 검찰청 폐지안 등은 결국엔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산물이란 것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검찰이 언론 등 대중적인 소통을 외면하고 외부와 문을 걸어 잠근 것에서 비롯된 결과란 분석인 셈이다. 정치권과 검찰의 유착관계가 2010년대 누아르 영화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면서 대·내외적으로 영화의 내용이 사실처럼 굳어졌다는 자평도 나온다.
검찰이 대중과의 소통을 단절한 사이,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시간이 갈수록 고착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일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공정성과 갈등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경찰에 대한 신뢰도는 44.8% 정도로 의료계(81.9%)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지난 2016년 한국행정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두 달간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도 국민의 72.6%는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검찰을 향한 국민의 높은 불신은 오래전부터 지속된 현상이란 뜻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10년 후를 보고 검찰이 문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젊은 검사들의 검찰 '탈출 러시' 현상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신뢰도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공보 업무를 담당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9일 아주로앤피에 "검찰 대변인 등 소통 담당관들이 10년 전부터 검사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홍보 업무를 안일하게 대해 검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굳어졌다"며 "중수처와 같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안도 이런 여론을 업으면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검찰의 폐쇄적인 문화 내지 고립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공유되자 대검찰청은 SNS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활용해 다양한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은 지난 2018년 2월 대검찰청 인스타그램인 'Pro_to_u'를 개설하고 블로그를 통해 '대검찰청 뉴스레터'를 발행해 검찰 내부 구성원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전국 검찰청의 꽃과 나무'를 소개하는 공모를 받아 공개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의 신뢰도 하락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10년을 내다보며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검찰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대변인 산하에 'Pro_to_u' 대학생 기자단을 운영하면서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도록 시도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검사 스스로도 인식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게 법조계와 여론의 공통된 지적이다.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조 검사에 대해 한 간부 검사는 “내가 본 영화 속 검사 중에 실제 검사와 가장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등에 묘사된 검사의 모습이 단순한 ‘왜곡’이나 ‘이미지 관리’ 문제는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물론 검사는 만만찮은 인상을 줘야 하는 직업이다. 특히 범죄자가 두려움을 느낄 만한 요소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검사 스스로 ‘특권 의식’을 갖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인신의 자유를 위협하는 수사권을 갖고 있는데다, 공수처 설립 전엔 기소권을 완전 독점하고 있어 검사는 잘못을 해도 기소 자체가 안 되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이런 습관과 오만이 몸에 배어 여전히 오만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변호사는 “법정에서 검사의 오류를 지적하자, 재판 끝나고 그 검사가 다가오더니 ‘당신들 한번 두고 봅시다’라며 사실상 협박한 적도 있다”며 “연수원 기수가 한참 선배인 변호사들에게, 심지어 검찰 선배인 전관 변호사도 있는데도 그러는데, 일반인에게는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권력의 사냥개’란 비판은 검찰이 새겨들을 만하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과 검사장 출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미 권력층에 속해 있어 더욱 그렇다. 더구나 다음달 검찰총장 교체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영화 <더 킹>에서는 한강식 부장검사(정우성 분)가 검사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소신? 우리 자존심이나 정의, 촌스럽게 이딴 것 좀 버리자. 여기 어떻게 왔는데 지방으로 뺑뺑이 돌 거야? 변호사 간판 내고 이혼소송할래? 법률서비스, 그딴 거 할 거야? 서비스업 하려고 고생했어? 그냥 권력 옆에 있어. 자존심 버려, 잡으라고. 그거 놓치고 나서 잘된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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