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평소 앓던 ‘고혈압’과 사망직전의 ‘과로’ 중 ‘사망’은 뭘까

서울행정법원 2019구합59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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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인호 변호사]

1. 들어가며

일교차가 심해지고 찬바람이 부는 환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질병 중 하나가 뇌졸중이다. 뇌졸중은 혈전이 뇌혈관을 막아 혈액공급이 차단되면서 뇌가 손상되는 허혈성 뇌졸중(뇌경색) 과 뇌혈관이 터지면서 뇌 안에 피가 손상되는 출혈성 뇌졸중(뇌출혈)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뇌졸중은 국내 단일질환 사망률 1위의 무서운 질병이다. 그리고 이러한 뇌졸중의 대표적인 유발 증상이 바로 고혈압이다.

이러한 뇌졸중,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환은 과로사의 주요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근로자가 평소에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면, 그 원인을 근로자의 개인적 질환에 기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보여진다.

오늘 살펴볼 판례는 망인 평소 고혈압을 앓았더라도, ‘사망’의 원인을 평소 ‘업무’로 인한 과로 및 스트레스와 사망 직전의 업무 강도 및 환경 등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2021. 3. 12. 선고 2019구합59691 판결이다.


2. 사건의 개요

(1) 망인은 1998년 이 사건 회사에 입사하여 2013. 12.까지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 후, 2014년부터 매년 1년 단위 촉탁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근무하였다. 망인은 사망 직전까지 이 사건 회사의 공장에서 생산팀에 소속되어 참치 캔 제조 공정 중 참치 살코기 분리작업을 수행하였다. 망인은 2018. 1. 3. 근무를 마치고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던 중 쓰러져 동료에 의해 발견되었고, 급히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으나, 2018. 1. 3. 18:58 사망하였다. 위 병원에서 작성된 사망진단서에 망인의 사인은 ‘미상’으로 기재되어 있다

(2) 근로복지공단은 2019. 1. 7. 망인의 사망사고에 대하여, 업무상 질병을 불인정한다는 결정을 하였는데,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작업량 체크 및 공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일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오랜 재직 경력 및 촉탁직 근무 경력으로 판단할 때, 일시적인 강한 스트레스로 발병을 초래할 만큼의 충격이나 정신적 부담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업무적 돌발 상황 및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 역시 확인되지 않으며, 일상 업무 대비 발병 전 1주일 간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30% 이상 증가한 사실이 없고 발병 전 4주, 12주 간의 1주 평균 근무시간으로 판단하여 볼 때, 단기, 만성 과로는 인정되지 않으며, 기타 휴일 부족, 유해한 작업환경, 예측이 곤란한 업무, 책임감 등의 업무부담 가중 요인도 없어,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 유족의 주장요지

(1) ① 이 사건 사업장은 매일 근로자들의 작업량을 확인하고 이를 공개하여 망인은 이로 인하여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았으며, 특히 망인은 촉탁직 근로자였으므로 재계약을 위해 실적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② 또한 망인은 삶아진 참치에서 나오는 증기 및 열기 등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하였고, 근로시간 중 휴게시간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였으며, 무거운 참치를 손으로 잡아 돌려가며 살코기를 발라내는 작업을 수행하였으므로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였다.

③ 한편 망인의 약간의 고혈압 증세가 있어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혈압관리를 정상적으로 해오고 있었으며 그 복용량은 노바스크 5mg과 아스피린 100mg로 경미한 고혈압 증세에 보편적으로 처방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2)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망인은 만성적으로 과중한 업무에 의해 심신이 쇠약해졌고, 사망 당일 갑작스런 보직 변경으로 업무상 부담이 급증하여 샤워 도중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므로,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4. 진료기록감정의 요지

이 사건에 관하여 망의 진료기록에 대하여 감정촉탁결과, ① 뇌지주막하출혈의 가장 흔한 원인이 뇌동맥류 파열이라고 보면서, ② 유해한 작업환경,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갑작스런 업무 환경의 변화 및 업무부담 증가로 인하여 발생한 스트레스 등이 뇌동맥류 발생에 위험인자는 아니지만 ③ 급격한 혈압 상승이 기왕 발생된 뇌동맥류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의 유발 요인이 될 수 있고, ④ 위 요인들에 의해 급격한 혈압상승이 있었다면 뇌지주막하출혈이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또한 ④ 법원 감정의는 망인의 뇌지주막하출혈과 업무 사이에 관여도를 25%로 추정하면서, 위 출혈의 원인은 망인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요인인 고혈압이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업무상 과로 또는 스트레스 등에 의한 급격한 혈압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 등의 기준에 따라 관련성이 판단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판단하였다.


5. 서울행정법원 2021구합59691 판결의 요지

(1) 망인이 본래 담당하던 직무는 2차 작업이었는데, 사망 당일 망인은 1차 작업에 차출되었다. 1차 작업에는 2차 작업에 비하여 육체적인 노동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망인의 동료도 “2차 작업자가 1차 작업을 하게 되면 무척 힘이 든다, 1차 작업자로 차출되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서 무조건 받아들이고 해야 하는 것이 관행이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2) 망인은 사망 전 근로시간 전부터 작업을 하거나 연장근무를 하였고, 그 배경에는 매일 당일의 작업량을 확인하여 이를 공개하여 작업량 실적을 압박하였던 이 사건 회사의 관행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데, 망인의 동료도 “17:00 퇴근을 자주하면 생산실적을 맞출 수가 없다”고 진술하였다. 즉, 위와 같은 관행은 촉탁직 근로자였던 망인에게도 스트레스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3) 망인은 뇌·심혈관질환 발병위험도 조사평가에서도 중등도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약물치료나 근무시간 제한의 조건에서 현재의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망인은 약물치료를 받고 있기는 하였으나, 위와 같은 평가결과는 현재의 부서에서 업무의 변화 내지 증가가 망인의 뇌·심혈관질환 발병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4) 이 법원의 감정의는 뇌지주막하출혈의 발병에 업무의 기여도가 25% 가량 된다고 판단하면서 망인의 고혈압이 더 큰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망인은 고혈압 유질환자로서 고혈압에 대한 치료를 받아 왔고 그밖에 생전에 망인에게 사망을 야기할 정도의 중한 질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에 대한 부검결과 뇌동맥류의 발생이 확인되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고혈압이 뇌지주막하출혈의 발병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은 업무상 요인으로 급격하게 혈압이 상승하여 망인의 고혈압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5) 따라서 위와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의 사망원인이 된 뇌지주막하출혈은 업무로 인한 과로 및 스트레스에 사망 무렵의 업무 강도 및 환경 등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하였거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망인의 고혈압을 악화시킨 결과라고 봄이 타당하다.


6. 결론

산재사건은 이미 발생한 사고나 질병에 관하여 권리구제의 측면에 따라 다분히 “상당인과관계”라는 요건에만 함몰되어 처리되고 있다. 상당인과관계의 인정을 위하여 다양한 간접사실들이 제출되고 있으나, 정작 산업재해의 국가적 관리라는 본연의 목적이 퇴색되고 있는 문제가 종종 발견된다.

국민의 ‘건강권’의 보장을 위하여 고혈압을 건강보험의 체계 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과 국민의 ‘안전권’의 보장을 위하여 작업환경상의 과중한 업무나 스트레스를 업무상 재해의 원인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결코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고혈압 또한 작업환경에 기인하였거나 가중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ⅰ) 형사적 책임을 묻기 위한 인과관계의 문제라면 몰라도, ⅱ) 국민의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건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책무를 부여받은 공공단체에게, ⅲ) 그 민사적·행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인과관계의 판단의 경우, 대상판례와 같이 보다 전향적인 태도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