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레이더] 물건 취급 받던 동물... 이젠 ‘동물’격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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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9 14:37
수정 : 2021-07-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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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지난 2020년 5월 인천에 사는 A씨(75세)는 전 주인에게 “책임감 있게 잘 키우겠다”고 약속을 하고 진돗개 두 마리를 넘겨받았다. 하지만 A씨는 약속과 달리 입양해 데리고 온 진돗개 두 마리를 1시간 만에 도살장으로 끌고 가 도살했다. 친구와 함께 보신용으로 먹기 위해서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진돗개를 재물로 보고 A씨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속여서 남의 재물을 편취 하거나 재산상 이득을 꾀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수사당국과 법원 모두 진돗개를 물건으로 본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반려동물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물건이나 사람의 재산으로 취급되고 있어서다.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물은 이중 유체물에 해당하는 물건으로 취급돼왔다.

그래서 동물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만약 판매자가 반려동물에게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소비자한테 팔았다면, 소비자는 매매계약을 해제하거나 판매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580조).

또 다른 사람의 동물을 몰래 가지고 간 경우 형법상 절도죄(형법 제329조)를, 제3자가 기르던 동물을 죽였을 경우 손괴죄(형법 제366조)를 각각 적용한다. 형사 실무상으로도 생명을 가진 동물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취급해 처벌해온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동물보호법으로 처벌하는 것보다 형법상 재산죄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형량이 더 높게 나오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한다.

일례로 A씨가 저지른 행동을 두고 “진돗개를 잘 키우겠다”고 전주인을 속인 행위에 중점을 두면 사기죄가 적용돼 최대 10년 형까지 받을 수 있지만, 잔인하게 학대하고 도살한 행위에 포커스를 맞추면 동물보호법이 적용돼 최대 3년까지만 처벌할 수 있다.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및 제46조 제1항 제1호는 동물을 학대한 사람한테 징역 3년 형까지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동물에 대한 인식 및 법적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동물을 법적으로 단순히 사람의 재산이 아니라 ‘생명체’로 인정해야 비로소 어떤 사람이 동물에게 해악을 가한다면 그에 맞는 법적 책임을 그 사람에게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 이제 물건이 아니다... '동물격' 신설

그러나 그동안 물건으로 취급돼왔던 동물이 앞으로는 민법상 독자적인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19일(오늘) 밝혔다. 입법 예고란 법률을 만들거나 개정할 때 법령안의 내용을 사전에 국민에게 알려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후 국회를 통화하고 공표되는 그 즉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이날 정재민 법무심의관은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 2018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이 민법상 동물과 물건을 구분해야 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동물을 그 자체로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안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피해에 대한 배상 정도가 국민의 인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생명존중을 위한 제도들이 추가 제안될 것”이라며 "사법(私法)의 기본법인 민법의 지위를 고려할 때 동물 보호 강화뿐만 아니라 생명존중을 통한 사회적 공존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두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제2조 제1호)로 범위를 둔 반면 이번 개정 예고 법안에서는 동물의 범위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정 심의관은 “동물보호법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며 “민법에서는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추후 구체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법무부는 다음 달 30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을 둬 본 법안에 대한 여러 의견을 수렴한 다음 최종 개정안을 확정해 국회에 넘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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