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이태원 참사 '구조적 원인', 법적책임 "벌금 800만원"

박용준 기자 입력 2025-04-10 17:03 수정 2025-04-10 17:03
해밀톤호텔 옆 불법 가벽 원인 지목 위법하되 고의는 없다이태원 해밀톤호텔 골목 사진연합뉴스
해밀톤호텔 옆 불법 가벽 원인 지목 "위법하되 고의는 없다"이태원 해밀톤호텔 골목 [사진=연합뉴스]


2022년 10월 29일 밤 156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압사로 이어진 비극은 좁은 골목, 비정상적 인파 흐름, 불충분한 대응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였다. 그 중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 해밀톤호텔 옆 불법 가벽에 대해 법원이 벌금형을 확정하면서, 참사 책임의 사법적 한계와 제도적 과제가 주목받고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골목에 철제 가벽을 불법 설치한 혐의로 기소된 해밀톤호텔 대표와 법인이 항소심에서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구조물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참사와의 인과관계나 고의성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을 유지하며 형사책임에는 제한을 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반정우 부장판사)는 10일 건축법 및 도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해밀톤호텔 대표 이모(78)씨와 법인 해밀톤관광에 대해 1심과 같은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사실 인정과 양형이 타당하다”며 검찰 항소를 기각했다.

이 대표는 허가 없이 호텔 서쪽 도로에 철제 가벽을 설치하고 테라스를 불법 증축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구조물이 참사 당시 골목 폭을 좁혀 인파 흐름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위법행위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과 2심 모두 “이 구조물은 2010년 이전부터 유사한 형태로 존재했고, 그동안 문제 삼은 적이 없어 피고인이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고의 없는 위법’으로 보고 벌금형을 유지한 셈이다.

이로써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첫 불법 건축물 관련 형사 재판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 판결은 도시 구조물이 재난 피해를 증폭시킨 사례에서 형사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사법부의 대답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경찰의 합동조사 결과와 다수 전문가들은 참사 당시 해밀톤호텔 옆 철제 가벽이 좁은 골목을 더욱 협소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의 흐름을 차단하는 ‘병목 구조’를 형성해 압사 피해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특히 참사 발생 지점인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세로 21m, 폭 0.8m, 높이 2.8m의 철제 가벽으로 인해 보행 유효폭이 줄어들었고, 이 구조물이 병목지점을 고착시켰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는 구조적·물리적 요인일 뿐, 형사법상 책임을 인정하려면 ‘위험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과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이 점에서 “법 위반은 인정되지만, 재난 유발을 의도하거나 위험을 예견하고도 무시한 정황이 없었다”고 보고 벌금형에 그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구조물 자체가 재난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뚜렷했음에도 형사책임은 제한적으로만 인정된 사례다. 특히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의 장기적 방치, 상습적 불법 건축물에 대한 형식적 단속, 재난 가능성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이태원 일대는 참사 이전에도 상습적인 인파 밀집구역이었지만, 건축물 불법 증축에 대한 행정단속은 사실상 방치돼 왔다. 특히 건축선 침범, 도로 무단 점용, 가건물 설치 등 경미한 위반은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통상 계도 위주 행정 처리를 해왔고, 재난 가능성과 연결 짓는 제도는 부재했다.

이날 함께 선고된 주점 ‘프로스트’ 대표와 라운지바 ‘브론즈’ 운영자에게도 각각 벌금 100만 원, 500만 원이 선고됐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이 대부분 경미한 행정범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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