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고객이 '위험 직업'이 아니라고 속이고 사망보험에 가입했는데 이를 보험사가 뒤늦게 알았다 하더라도 보험은 유효하며 따라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객의 직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험 가입자를 확대하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보험에 가입시켜 보험료만 챙기다가, 나중에 중요정보 통지 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는 보험사에 대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특히 이런 경우 상법상 보험 계약을 맺을 때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 위반'일 수는 있지만 '위험통지의무 위반'이 아니란 점도 분명히 했다. 직업을 중간에 바꾼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로 서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의 유족 3명이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메리츠가 2억212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일용직 근무자였던 A씨는 2021년 7월 건설 현장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A씨 배우자는 이후 메리츠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메리츠는 "보험계약자가 중요 사항에 대한 통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를 거절했다. A씨와 A씨 배우자가 사망보험 계약을 체결할 때 이들이 A씨 직업을 사무원, 건설업종 대표, 경영지원 사무직 관리자 등 실제 직업보다 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직업으로 속였다는 것이다. 이에 A씨 배우자 등은 메리츠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도 메리츠는 "A씨가 보험사에 안내한 직업과 다른 직종에 종사해 보험사고 위험이 커졌음에도 계약 체결 이후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상법상 통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리츠가 근거로 든 것은 상법 65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험변경증가의 통지 의무'다. 이에 따르면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된 사실을 안 경우 지체 없이 보험자에게 통지해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하지만 1심은 "보험계약 기간 중 실제 직업이 변경되지 않았다면 보험사에 고지된 직업과 다르더라도 상법상 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법상 통지의무는 보험기간 중 변경사항에 대해서만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취지다.
다만 재판부는 A씨와 배우자가 보험계약 당시 중요한 사항을 사실대로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 상법 651의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순 있다고 하면서도, A씨의 경우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법에서 정해 놓은 기간이 이미 지나 보험사의 해지권이 소멸했다고 봤다.
상법 651조는 '보험계약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고지한 때에는 보험자(보험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이내,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 한해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보험자가 계약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알지 못한 때에는 계약해지를 할 수 없다.
메리츠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통지의무는 보험계약 성립 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보험기간 중에 사고 발생의 위험이 새롭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며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해 보험계약 성립 시 고지된 위험과 보험기간 중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 위험에 차이가 생기게 됐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기간 중 사고발생의 위험이 새롭게 변경 또는 증가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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