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과제㊦] '체액 테러', 성범죄 아니다? 법사위 논쟁 예고하는 현안들

홍재원 기자 입력 2024-06-12 17:07 수정 2024-06-12 17:07
  • 재물손괴죄 적용…"성범죄에 포함시켜 처벌해야"

  •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 '한국형 제시카법'도 논란

커피를 마시는 머그컵 이미지 여성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에 체액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머그컵으로 커피를 마시는 이미지(기사와 상관 없음). 여성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에 체액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아주로앤피]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거나 정당방위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형사법 체계 정비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높은 관심을 얻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아주로앤피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입법 과제 정리 내용을 바탕으로 ㊤편에서 이 부분을 분석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이 벌어지는 ‘체액 테러’에 대한 법 개정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다른 법 조항만 적용해 피의자가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사례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재물손괴죄만 적용, 성범죄 전과도 안 남아
서울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A씨는 2020년 여성 후배 B씨의 텀블러를 화장실로 가져갔다. 자위행위를 한 뒤 체액을 텀블러에 몰래 담았다. 이런 행동을 6번이나 했다. 그러나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재물손괴. 텀블러를 손상시켰다는 것으로, 성범죄 혐의를 적용하지 못해 벌금 300만원만 처분했다. A씨는 성범죄 전과 기록을 피했다.
 
이듬해 해임되자, A씨는 되레 "성희롱이 아닌 재물손괴 행위에 불과하다"며 해임 취소 소송을 냈다. 패소하긴 했지만, 그는 “자위행위를 할 때 어떤 기구를 사용할지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성적 자유”라며 "성적 언동이나 품위손상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체액 테러’를 아예 성범죄에 포함시켜 처벌해야 한다는데 21대 국회 여야가 합의했지만 법 개정엔 이르지 못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체액 테러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즉 체액 테러를 성범죄로 규율하려면 법정형을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재물손괴죄 법정형(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보다 약화할 수도 있지만 수강, 치료프로그램 등 성범죄에 틀로 규제할 수 있어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게 조사처의 분석이다.
 
체액 뿐 아니라 음란 편지를 옆집 대문에 수 차례 끼워넣다가 기소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신매체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상대방에게 말, 글, 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까지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이런 사례에 대한 법 개정도 과제로 남았다.
 
입법조사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 등을 상대방에게 직접 도달케 하는 행위 전체를 처벌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성범죄자는 모여 살라” ‘제시카법’ 공방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을 추진했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제시카법은 미국의 9세 소녀 제시카 유괴·강간·살인사건에서 유래한 용어다. 2005년 옆집에 살던 범인이 아동 성범죄로 10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2년 만에 모범수로 출소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에 플로리다주는 아동 성범죄자는 초범이라도 25년 이상의 징역, 재범은 무기징역 선고를 원칙으로 하고 출소해도 평생 전자 위치 추적 장치를 착용해야 하는 ‘제시카 법(Jessica's Law)’을 제정한 바 있다.
 
법무부는 지난 1월 ‘한국형 제시카법’이라 부르는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을 제출했다. 아동에 대한 상습 성범죄자에 대해 ‘검사의 청구와 법원 결정’으로 거주지 지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국가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거주지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와 함께 성충동 약물치료를 연계하는 방안도 담겼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를 넘지 못했다. 이미 징역형을 받은 사람을 또 격리하는 개념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학계에서는 “거주지 제한 규정의 효용성 자체가 의문”이라며 “미국 내에서도 효과없는 상징적인 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입법조사처는 한국형 제시카법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조사처는 “특별한 예방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시행할 수 있는데, 효과에 대한 뚜렷한 실증적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과잉금지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습 공탁, 어떻게 막을까
이 외에도 최근 ‘기습 공탁’으로 인한 감형이 문제가 되면서 제도 개선 목소리가 높다. 공탁이란 형사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겨 가해자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데도 가해자가 판결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공탁하고, 법원이 별도로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형을 감경해준 사례가 다수 발생해왔다.
 
또 공탁자가 임의로 형사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어,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아 가지 않은 사이에 가해자가 감형을 받은 뒤 재빨리 공탁금을 회수해 갈 위험도 있다.
 
이에 따라 공탁법 개정도 22대 국회에서 적극 검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입법조사처는 “공탁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게 이용될 수 있도록 형사공탁이 가능한 기한을 설정하고 피공탁자 또는 그 법률대리인의 의견 청취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2대 국회 과제㊤] 촉법소년 연령 낮출까…'정당방위' 요건 완화도 법사위 과제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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