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日 동의 없이 정부 '제3자 변제' 추진…"법적 효력 없어"

남가언 기자 입력 2024-06-10 18:04 수정 2024-06-11 01:14
  • "정치외교상 '간접 이익' 불과...정부 변제는 위법"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로앤피] 강제징용 피해 배상과 관련해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 해법의 유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이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기습적으로 제3자 변제공탁을 했다. 반대 피해자들은 "사전 협의나 양해 없이 전화 한 번 걸어서 '법원에 공탁했다'고 통보하는 것은 예의도, 경우도 아니다"라며 반발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변제공탁은 법원에서 모두 불수리 됐고 불수리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도 기각됐다. 정부가 기각결정에 대해 항고해 현재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는 제3자 변제안이 법적으로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법 제469조에서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덧붙이고 있다"며 "채권자인 피해자들이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제3자 변제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고, 이는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지난해 3월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제3자 변제안은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고 일본 기업 대신 판결금을 변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부 해법이 발표된 직후 피해자들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돈은 안 받는다", "돈 필요 없다. 일본 정부가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을 권력자가 이렇게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냐"며 일본의 사과나 재원 참여 없는 정부 해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날 대한변호사협회가 개최한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으로서 제3자 변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토론회'에서 이같은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방식이 피해자의 의사를 배제한 채 일방적이라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제3자 변제로 과거사 사건 판결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외교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익이 있다고 주장하나, 이같은 이익이 우리 민법상 법정대위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3자로서 '변제할 정당한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직접적인 법적 이익이라기 보다는 정치 외교상의 이익이며, 사실상의 간접적 이익에 불과해 채권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를 허용할만한 이익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변제할 정당한 이익'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는 상황해서는 변제자와 채권자 양 당사자의 의사와 이익을 비교형량해 제3자 변제를 유효·적법한 것으로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재차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제3자 변제안이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채무자인 일본기업의 동의도 받지 않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제3자 변제안에 동의한다면 '종국적 변제자'가 일본기업이나 일본 정부가 되고, 이는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 정부가 일본에) 구상권 청구도 논의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쌍수 들고 환영하면서도 정작 우리 재단의 제3자 변제에 공식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채권자도, 채무자도 동의하지 않는 변제의 방식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고 변제의 원인이나 이익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는 제3자로서의 변제는 민사법적으로 유효한 변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강제동원 소송대리인을 맡았던 임재성 변호사도 "강제동원지원재단 측은 한 인터뷰에서 '공탁은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 제3자 변제의 과정이었고 변제 완결을 위해 공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했는데, 이는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오직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해 '변제의 완결'이 필요하다는 국가주의적 입장"이라며 "반대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공탁은 매우 부당하고 위법하다"고 말했다. 

한편 관련 소송이 장기화 되는 상황에서 피로감을 느낀 일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 정도에서 멈추고 싶다"며 정부 해법에 찬성했다. 하지만 강제동원지원재단은 제3자 변제를 위한 재원이 없는 상황으로, 강제동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 피해자에게 제3자 변제가 실제로 이뤄진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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