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합병'에 정부 2000억 날렸다…법무부·대형로펌도 '속수무책'

  • 국제재판 메이슨에 패소, 800억 증발 위기
  • 지난해 엘리엇 1300억…'줄줄이 대기 중'
  • "삼성 합병에 정부 개입해 투자자 손해"
  • 국내 1심 판결과 반대 결과…"불복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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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12 11:23
수정 : 2024-04-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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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검찰이 2020년 9월1일 이 회장을 기소한 지 1천252일 약 3년5개월 만이다 20240205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이른바 '삼성 합병'과 관련해 미국계 헤지펀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이 또 일부 인정됐다. 앞서 엘리엇에 대한 배상 판결액까지 합하면 정부 배상금은 2000억원이 넘는다. 법무부가 대형로펌에게 자문도 받으며 국제투자분쟁 해결 절차(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를 준비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날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중재판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에 3203만876달러 및 지연이자(2015년 7월부터 5% 연복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고 밝혔다. 한화 약 438억원 수준으로, 이는 메이슨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약 2억 달러(약 2737억원) 중 16%가량이 인용된 것이다.

배상 원금에 지연이자, 법률비용 1031만8961달러(141억원)와 중재비용 63만유로(9억원)를 모두 합치면 정부가 메이슨에 줘야 할 금액이 약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이슨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투표 찬성 압력을 행사해 양사 간 합병비율이 적절치 않은데도 찬성 결정을 내렸다"며 2018년 9월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메이슨 측 주장이 일부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메이슨에 앞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같은 취지로 ISD를 제기했다. PCA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690억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지연이자 등을 합하면 정부가 지급해야 할 돈은 1300억원대에 육박한다. 정부는 이 판정에 불복해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연달아 PCA가 한국 정부에 일부 책임을 인정하면서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물게 된 가운데 법무부와 국내 초대형 로펌까지 자문에 합류했지만 해외 배상을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메이슨 ISD는 법무법인 KL 파트너스와 미국 로펌 Latham & Watkins가 청구인인 메이슨을 대리하고, 한국 정부는 법무법인 광장과 White & Case가 대리했다. 엘리엇 ISD도 KL 파트너스와 Three Crowns가 엘리엇을 대리하고, 한국 정부는 광장과 영국 로펌 Freshfields가 맡았다. 

문제는 이런 소송이 아직 줄줄이 대기 중이란 점이다. 엘리엇과 메이슨 외에도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ISD는 4건이나 남았다. 2018년 현대엘리베이터의 단일 최대주주인 쉰들러홀딩스AG가 한국 정부에 1억9960만 달러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2013년~2015년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이 진행됐는데, 쉰들러는 경영상 목적이 아닌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위법하게 진행됐음에도 우리 금융당국이 이를 묵인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국내 판결과 달리 해외에서 잇따라 패소하면서 정부가 물어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지난 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주요 쟁점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선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에만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합리적인 사업적 목적이 존재한 이상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메이슨 등과의 국제 소송에서도 우리 정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도 나왔었다. 

법조계는 정부가 엘리엇 사례에서 취소소송(국제중재 무효소송)을 제기한 것과 같이 메이슨 사례에서도 불복 절차를 밟은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사실상 같은 쟁점이라 (PCA가) 앞선 엘리엇 사례와 유사한 취지로 메이슨 사례도 판정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법무부가 남은 과정을 어떻게 준비할 지 (취소소송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잇따라 해외 자본에 패소하자, 시민사회에서는 국고 손실이 예상되므로 판정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통상분야 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법무부에 이번 판정문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했다. 

한편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ISD도 늘어나고 있다. 2020년 7월 한 중국인 투자자 A씨가 정부를 상대로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ISD를 제기한 건이다. A씨는 국내에서 수천억원대 대출을 받았다가 갚지 않아 담보를 상실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5월에는 또 다른 외국인 투자자가 부산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토지 수용에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며 537만 달러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2021년 10월에는 이란 다야니 가문이 한국 정부의 배상금 지급 지연 문제 등을 지적하며 두번째 ISD를 제기했다. 앞서 다야니 가문은 201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과정에서 채권단에 의해 계약금 약 578억원을 몰취당하자 이미 한 차례 정부를 상대로 935억 규모의 ISD를 제기한 적이 있다.

정부는 그 동안 대이란 제재 등으로 인해 외화 및 금융거래가 제한돼 배상금을 지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다야니 가문이 이를 문제 삼으며 배상금 지급을 재차 요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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