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②스토킹처벌법, 빈틈 메워야

  • 신당역 살인 사건, 전주환 신상공개
  • 이수정 "반의사불벌죄 폐지해야"
  • 반의사불벌죄 폐지·위치 추적 담긴 개정안 발의
  • 경찰, 현장 대응책 마련 의지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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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20 17:34
수정 : 2022-09-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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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화장실 앞에 놓인 추모의 꽃. 지난 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주환이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전주환(31)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은 스토킹처벌법의 빈틈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피해자는 경찰에 스토킹으로 가해자를 고소한 직후를 제외하면 별다른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오후 9시께 자신을 스토킹하던 동료 남성 역무원 전씨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8일부터 한 달간 ‘신변보호 112시스템 등록’ 조치를 받았다.
 
휴대전화 번호를 112신고 시스템에 등록해 관련 신고를 접수하면 경찰이 더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이 밖에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를 비롯해 스마트워치 지급이나 연계 순찰 등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 적용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이뤄지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법은 다음과 같다. 잠정조치는 긴급응급조치에 유치장·구치소 유치가 가능한 단계가 추가된 것이다.
 
스토킹처벌법 제4조(긴급응급조치) 1항 사법경찰관은 스토킹행위 신고와 관련하여 스토킹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하여질 우려가 있고 스토킹범죄의 예방을 위하여 긴급을 요하는 경우 스토킹행위자에게 직권으로 또는 스토킹행위의 상대방이나 그 법정대리인 또는 스토킹행위를 신고한 사람의 요청에 의하여 다음 각 호에 따른 조치를 할 수 있다.

△제1호 스토킹행위의 상대방이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제2호 스토킹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 제2조 제1호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스토킹처벌법 제9조(스토킹행위자에 대한 잠정조치) 1항 법원은 스토킹범죄의 원활한 조사·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스토킹행위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이하 “잠정조치”라 한다)를 할 수 있다.

△제4호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

 
112시스템 등록 기간 연장도 없었다. 피해자가 연장을 원하지 않았으며 추가 피해를 신고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조치는 지난해 11월 초 해제됐다. 이후 피해자가 전씨를 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를 했을 때도 추가 조치는 없었다.
 
결국 10개월 뒤 전씨가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었던 셈이다.
 
지난해 신변보호 대상 여성이나 그 가족을 살해한 김병찬(35), 이석준(25) 사건 이후 여러 제도적 개선책이 쏟아졌지만 피해자 불원 의사 한 번이면 모든 제도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토킹 범죄 피해 대응책을 촉구하는 청년단체. 지난 19일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를 비롯한 청년단체 관계자들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일어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 스토킹처벌법 개정 목소리 높여
전문가들은 스토킹 피해자들이 보호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과 관련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날 오후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현행 스토킹은 피해자가 합의해주면 사건이 그냥 유야무야 증발을 하게 돼 있다. 반의사불벌죄, 친고죄이기 때문”이라며 “피해자가 고소했는데 고소를 취하해주면 얼마든지 사건화가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피해자를 협박하고, 못살게 구는, 그래서 결국은 살해하기에 이르는 식으로 법률이 만들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신변보호제도와 관련해선 감시 대상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의 신변보호 조치를 살펴보면 스마트 워치(긴급신고가 가능한 시계), 피해자 주거지 맞춤형 순찰, 피해자 임시숙소 제공, 전문 보호시설 연계 등이 있다. 즉, 피해자 생활이 제한받거나 피해자가 이동해야 하는 등 감시 대상이 피해자다.
 
이수정 교수는 “선진국 중에선 재판 전에도 가해자에게 다양한 전자 감시를 하는 곳이 있다”며 “피해자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커에게 전자발찌를 채운 뒤 피해자 근처에 접근하면 바로 알 수 있게 법무부나 경찰청이 정보를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성가족위 전체회의,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추모 묵념. 지난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권인숙 위원장과 여야 의원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 앞다투어 개정안 발표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16일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을 포함한 의원 12명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최근 스토킹을 당하던 신당역 여성 역무원이 살해당하면서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 가해자가 스토킹으로 신고됐음에도 법원이 구속청구를 기각하는 등 스토킹피해자 보호에 사각지대가 노출됐다는 것이 발의 배경이다.
 
법안 주요 내용에는 스토킹행위자 위치추적이 있다. 이는 스토킹행위자에 대한 경찰의 긴급 응급조치와 법원의 잠정조치 중 스토킹범죄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우려가 있고 스토킹범죄 예방을 위해 긴급한 경우에는 스토킹행위자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안 제4조 제1항 제3호 및 제9조 제1항 제5호 신설).
 
또 다른 핵심은 스토킹범죄자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삭제다. 현행 스토킹처벌법 제18조 제3항은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해당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수사당국으로 하여금 2차 스토킹 범죄나 보복범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주로앤피와 통화하면서 “반의사불벌죄는 애당초 삭제됐어야 했으며 여러 번 폐지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도 해당 내용이 담긴 법안이 제출된 적이 있으나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장, 신당역 역무원 살해사건 수사 점검. 윤희근 경찰청장(가운데)이 지난 15일 오후 신당역 역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부경찰서를 방문해 보고를 받고 있다. 윤 청장은 철저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 제도 개선안 마련을 주문했다. [사진=연합뉴스]

◆현장도 변화···경찰 “긴급응급조치 판단조사표 개선”
경찰이 스토킹 긴급응급조치 판단조사표를 개선해 다음 달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긴급응급조치 판단조사표는 경찰이 신고 현장에서 범죄 재발 우려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든 기준표로, 현행 표는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행위 유형을 나열하고 위험성과 재발 우려 평가 문항을 담은 수준에 그친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개선안에는 스토킹 행위 유형에 대한 구체적 예시와 스토킹 피해 시점, 기간이 추가됐다.
 
가해자 자극 외부 요인과 술 약물 문제, 정신병력, 극단적 선택 언급 등 범죄를 예측·검증할 수 있는 항목도 추가했다.
 
아울러 ‘위험성 점수제’를 도입해 현장 경찰관이 신속하게 긴급응급조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긴급응급조치를 요청하지 않을 때는 사유를 기록하도록 했다.
 
경찰은 현장 경찰관들이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 등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위반 시 벌칙 조항을 신설하는 법 개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스토킹 등 보복 위험이 현저한 피해자에게 전자충격기와 가스 분사기 등 호신용품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자충격기와 가스 분사기는 경찰 허가가 필요한 용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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