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노회찬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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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세상을 무시하고 세상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는 것이, 사실 이제까지 우리의 진보나 운동권 출신들의 어떤 약점이 아니었는가?’라는 거다. ‘나는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했다. 헌신했다. 희생했다. 나는 진보 진영에 속해 있으니까 나는 무조건 옳다. 아니면 우리 진영은 무결점·무오류다. 진영이 다르면 저쪽은 다 나쁘고, 우리는 다 좋다’, 이건 설득력이 없는 거다. 오히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왜, 무엇이 옳은 지를 국민들이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거기에서 드디어 옳다는 판정이 내려지게 되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 나온 책 <음식천국 노회찬>에 나오는 노회찬 의원의 어록 중 하나다. <음식천국 노회찬>은 노회찬 재단이 기획하고 이인우 기자가 쓴 책으로, 노의원이 생전에 자주 가던 맛집 27곳에서 노의원과 인연을 맺었던 지인, 동료, 정치적 동지 등이 그룹별로 모여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노회찬을 추억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노의원의 말을 접하며 요즘 정치판을 떠올리게 된다. 요즈음 시끄럽게 떠드는 말들을 들어보면, 진영논리에 빠져 자기는 무조건 옳고 상대는 틀리다고 한다. 도대체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보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에 대해서도 끈기를 가지고 설득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큰소리로 외치기만 하다. 정치판이 그러니 일반사람들도 그렇게 진영으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요즈음 유투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가짜뉴스까지 횡행하여, 이를 가려내려다 보니 머리가 어지럽기만 하다. 이럴 때 진영논리를 질타하는 노의원 말은 죽비로 우리를 깨우는 것 같다. 특히 촛불로 들어선 진보정권이 국민을 설득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혼선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노회찬 같은 진보정치인이 아쉽기만 하다.

얼마 전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상대방의 흠집을 잡아내려는 흑색선전이 난무하였다. <음식천국 노회찬>에는 선거에 관련된 노의원의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노회찬이 노원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홍정욱 후보와 붙었을 때이다. 당시 노회찬 캠프에 홍후보의 미국 유학 중 사생활 관련 제보가 들어왔었단다. 내용도 꽤 구체적이었단다. 당연히 캠프 관계자들은 호재라며 이를 선거운동에 활용하자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노회찬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더란다. 그런 걸로 선거 운동해서는 안 된다며...

독설이 오가는 요즘 정치판을 보면서 또 떠오르는 것이 노회찬의 유머다. 처칠이나 링컨 같이 자기 주장을 유머로서 펼칠 줄 아는 정치인이 드물었던 우리 정치판에 노회찬의 등장은 신선하기만 하였다. 처음 노회찬이 정치판에 등장하여 “50년 동안 한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서 판이 이제 새까맣게 됐다. 이제 판을 갈아야 한다.”라고 외친 말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올 1. 20.에 논란 끝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하였다. 사실 공수처 법안은 노회찬 의원이 2016. 7. 21. 처음 발의하였었다. 노의원이 이를 발의하면서 한 말도 유머를 곁들인 명쾌한 발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반대하는 것은 동네 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음식천국 노회찬>을 보다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니, 마지막으로 노회찬이 평양냉면집 <을밀대>에 들렀다가 남긴 유머 트윗 한마디도 올려보자. “을(乙)에 몰두하다 을(乙)밀대에 왔습니다. 더운 날씨 고생하는 분들 생각하며 잠시 면학(麵學) 분위기에 젖어 봅니다. 최근 일면식(一麵食)도 못한 분들껜 죄송”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뜬 지 3년이 되어간다. 새삼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