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기획]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 법조계의 일제 잔재

  • 일본에서 이식된 ‘번역 법학’에 뿌리를 둔 우리나라 법조계
  • 용어, 표현은 물론 건물배치와 호적등본까지 일제 잔재 잔존
  • 대법원 판례보다 큰 영향력 가진 일본 동경최고재판소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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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13 16:48
수정 : 2019-08-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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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사법’
한때 우리 법조계를 일컫던 매우 모욕적인 이름이다. 법률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의 산물인데 우리의 법률과 사법은 외국으로부터 고스란히 베껴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던 모 교수의 민법총칙은 일본 어떤 학자의 것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고 또 다른 교수의 헌법학원론은 일본 모 교수와 그의 스승인 독일 모 학자의 저술을 짜깁기 한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인정받기도 했다.

방송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박지훈 변호사(45·법무법인 디딤돌)은 “정말 베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비슷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일본서적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베껴왔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어를 익혀야 한다’고 조언하는 고시 선배들도 적지 않았다. 학술연구는 물론 사법시험 문제와 대법원 판결까지 일본 동경최고재판소 판례가 등장할 정도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00년대 이후 우리 헌법재판소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크게 바뀌게 됐지만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는 법조계 곳곳에 남았다. 법전과 판결문에 남은 일본식 표현부터 건물배치와 호적등본처럼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는 일제 잔재도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검(왼쪽)과 서울서부지법(오른쪽)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사진=카카오맵 로드뷰]

▲검찰청 옆에는 왜 법원이 있을까?

법원과 검찰청이 나란히 배치된 양식도 일제 강점기가 기원이다. 우리나라는 전국 64개 지역 어딜가나 검찰청은 법원 바로 옆에 있다. 업무상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검찰청은 차라리 경찰청 옆에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메이지 헌법을 만든 일본은 삼권분립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행정기관인 사법성 아래 재판소와 검찰국을 두었는데, 재판소와 검찰국의 건물도 한곳에 나란히 세웠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법원과 검찰의 건물배치로 이어졌다. 일본은 이미 그런 배치를 버린지 오래지만 한반도에선 여전히 남았다.  

2019년 개원한 수원고법 청사를 영통동에 독립건물로 세우기로 했다가 계획이 백지화됐다. 검찰이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뿐만 아니다. 군사법원을 일반법원에서 분리해 따로 두는 것도 일본군 잔재다.

군 법무관 출신인 최강욱 변호사는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거주 자국민을 파견군 사령관이 재판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군사법원“이라며 ”우리 군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해 민간법원에서 항소심을 담당하도록하는 군사법원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심의 중"이라고 말했다.
 

법제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법률명칭들, 띄어쓰기가 돼 있지 않다.[사진=법제처]



▲법률명칭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미성년자를 성적 착취나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 중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속칭 ‘아청법’이 있다. 아청법의 공식 명칭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등에관한법률’로  띄어쓰기 없이 빼곡히 붙여 쓴다. 

국어 학자들은 이것이 일본의 영향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지금도 일본은 띄어쓰기, 특히 한자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결문에도 일본식 표현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된다고 할 것이다’ 하는 서술어다. 이는 일본식 표현 ‘노데아루(のである; ~할 것이다)’에서 유래한 번역투의 표현이다. 대법원은 최근 “~라고 할 수 있다” “~가 될 수 있다” 등으로 바꿔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형사 판결문에서 자주 쓰이는 ‘~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나 행정소송 판결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와 같은 부정문을 연달아 붙이는 습관 역시 일본 식민잔재라는 데 학계 의견이 일치된다.

이를 두고 국어학자인 고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어느 기고문에서 “법조계 등에서 쓰는 고약한 일본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밖에 법조계에서는 호적과 등기업무를 법원에서 관장하고 있는 것도 일제 잔재로 보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호적업무를 조선고등법원에 맡긴 것이 시초가 됐다는 것이다.

사법부 고위직을 역임한 법조인은 “법원이라는 명칭도 일제 잔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자국 영토 내 사법기관은 ‘재판소’로 부르면서 조선에 설치된 사법기관은 ‘법원’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는 “익숙해져 그것이 일제 잔재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많지만 그 쓰임새를 살펴 하나씩 바꿀 때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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