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유 없는 판결문..."소액사건 범위 ‘법률’로 정해야"

대법원 규칙, 3000만원 이하 소액사건 분류

신속처리 목적...사건 수 증가로 제도 취지 몰각 우려

표창원 의원,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 대표발의

  • 프린트
  • 글씨작게
  • 글씨크게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민사소송을 낸 A씨가 패소한 뒤 받은 판결문 내용이다. A씨는 항소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패소 이유를 몰라 항소이유서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난감하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소액사건심판법상 소송가액이 3000만원 이하인 민사사건은 ‘민사 소액사건’으로 분류돼 간이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 

민사사건은 소송가액 3000만원까지는 소액사건, 3000만원 초과 2억원까지는 단독사건, 2억원 초과는 합의부사건으로 분류된다. 법원은 2017년 1월 1일부터 기존 2000만원이던 소액사건 기준을 대법원 규칙에 따라 3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단독사건의 수를 줄여 단독판사의 심리 충실화를 도모하기 위한 조치였다.

소액사건 범위가 확대되자 사건 수가 증가했다.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 79만8215건, 2015년 70만2273건, 2016년 68만6407건으로 감소하던 소액사건 수가 2017년 77만4440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사건 수 증가는 신속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소액재판 제도의 취지를 몰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 소액사건을 접수했는데 첫 변론기일이 6개월 만에 잡혔다”며 “일반적인 민사소송이 6개월 이상 걸리는 반면 소액사건은 2~3개월 정도면 사건을 끝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사건 수 증가로 신속한 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소액재판 제도 운영에 문제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소액사건은 판결문에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한할 뿐 아니라 소액사건의 당사자를 일반 민사사건의 당사자와 달리 취급해 평등원칙에 저촉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소액사건심판법’이 제정된 1973년에는 소액사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했다. 하지만 1980년 1월 개정된 법은 소액사건의 기준을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소액사건심판의 적용범위를 현실에 맞게 적절히 조정·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이유였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반대의견도 있었다. 회의록에는 “개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면서도 “법원의 관할은 법률사항인데 이것을 대법원규칙에 위임하면 입법권을 제약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런 경우 대법원은 국민의 입장보다도 법원의 사정에 치중하는 관할조정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위법규인 대법원규칙에 위임하는 경우 그 제정 및 개정이 법률과는 달라 일반국민에게 주지되기가 어려우므로 국민은 법원의 관할에 혼란을 일으킬 우려도 있어 법안을 그대로 채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소액사건의 범위를 ‘법률’로 규정해 국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돼 왔다. 소액사건은 상고이유가 제한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2심제로 운영되는 셈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소액사건 소송가액 기준을 법률로 정하자는 취지의 소액사건심판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표 의원은 “소액재판을 받을 것인지 정식재판을 받을 것인지는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국회에서 법률로 소송가액 기준을 정해 국민 중심 소액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