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윤석열과 최재형의 대선 출마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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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05 00:09
수정 : 2021-07-0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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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위).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8일 중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사진 아래).


지난 3월 사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최재형 감사원장도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한다. 최 전 원장은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6개월 앞두고 지난달 28일 사임했다. 여기서 이런 가정을 해 본다. 만약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이 정치 참여를 하지 않고 전직 검찰총장과 전직 감사원장으로 남아 있는다면 어땠을까? 이들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나라 발전에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가정을 해 보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정치인 자질을 갖고 있는지, 나아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과연 당선될 것인지 하는 의문 때문이 아니다. 한때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난장판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예상 때문도 아니다.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 같은 사정기관장 자리에 있다가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면 검찰이나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비판 때문도 아니다.

윤석열 전 총장·최재형 전 원장이 국민 지지 높은 이유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이 전직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이들이 대선 후보로서 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의 높은 평가와 지지가 역설적으로 이들의 정치 참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다. 검찰총장 또는 감사원장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직무 상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불법과 비리를 감시해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불법과 비리 중에서도 으뜸가는 감시 대상은 살아있는 권력의 불법과 비리다. 살아있는 권력의 불법과 비리를 제대로 감시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강한 소신, 그리고 권력의 핍박에 굴하지 않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은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런 소신과 의지에 대해 국민의 인정을 받았다. 모처럼 국민이 바라던 검찰총장다운 검찰총장, 감사원장다운 감사원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인정과 평가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다.

1948년 건국 이후 수많은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나름대로 훌륭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이나 최재형처럼 국민의 높은 평가와 지지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국민이 바라는 검찰총장, 국민이 바라는 감사원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살아있는 권력의 불법과 비리를 감시하기는커녕 권력 눈치를 보거나 권력에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였다. 권력의 핍박을 받아가면서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고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대로 그 직무를 수행한 사람들은 없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검찰총장 재임 중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불법 사건, 조국 전 법무부장관 부부의 비리 등을 수사했다. 이 수사로 정권에 밉보여 사퇴 압력과 온갖 핍박을 받았다. 법무부장관의 몇 차례에 걸친 수사 지휘권 행사로 식물총장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징계위에 넘겨져 직무 정지 조치에 이어 정직 2개월 징계를 당했다. 검찰총장이 그토록 정권의 탄압과 핍박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검찰총장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

검찰총장·감사원장 롤 모델 세운 두 사람

현 정권 사람들과 그 지지자들은 윤 전 총장이 검찰 개혁에 반대하기 위해 정권 비리를 수사했다는 둥, 정치적 중립성을 어기고 현 정권 비리만 골라 수사하는 선택적 수사를 했다는 둥 비난한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정권이 추진한 최대의 검찰 개혁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이 문제에 대해 윤 전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가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총장 취임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을 저지하거나 무산시키려고 검찰이 국회에 로비하던 일을 중단시켰다.

이 정권은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사 관행과 문화의 개선도 독려했다. 윤 전 총장은 밤샘 수사와 피의 사실 공표 금지, 검찰 포토라인 폐지와 고위 공직자 비공개 소환 등을 바로 실시했다. 묘하게도 포토라인 폐지와 비공개 소환의 첫 번째 수혜자가 조국씨 부부였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는 법무부와 검찰 상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강행했다. 이 사건은 박근혜의 대선 승리에 흠집을 낼 수도 있는 민감하고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 수사를 밀어붙였고, 결국 좌천당하기까지 했다. 이 정부 들어서는 적폐 청산 수사에 나서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구속했다.

윤 전 총장이 선택적 수사를 한다고 비난하는 현 정권 사람들 중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적폐 청산’ 수사를 선택적 수사라고 비난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현 정권은 박근혜 정권에 밉보여 한직을 떠돌던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라는 검찰 최고 요직에 임명했다. 그런데 칼날이 자기들을 향해 오자 검찰개혁에 저항한다느니,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한다느니 갖은 핑계를 대며 핍박하고 비난했다. 이 모든 일은 전 국민이 알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헌법과 법률 수호라는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다.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의 불법성을 감사한 게 대표적이다. 탈원전은 현 정권의 대선 공약이자 최대 역점 사업이다. 감사를 통해 청와대 담당 비서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고위 공무원들의 불법 행위를 밝혀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가 착수되자 다른 직원의 눈을 피해 일요일 한밤중에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증거 자료와 청와대 보고 자료 등 444개의 컴퓨터 파일을 삭제한 사실을 밝혀냈다. 탈원전이라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대 사안을 충분한 검토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졸속으로 밀어붙인 사실도 밝혀냈다.

최 전 원장은 청와대가 김오수 전 법무부차관(현 검찰총장)을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 하자 반대했다.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면 안 된다며 끝까지 청와대에 맞섰다. 감사위원은 감사원장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김오수의 감사위원 추천을 거부한 것이다. 이 역시 감사원장으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직무를 다한 사례다.

사회 분야별 롤 모델 많아야 발전된 사회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원장은 이처럼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의 직분에 충실했다. 최고 사정기관인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보여줬다. 국민이 바라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뜻깊은 일이다. 이 같은 모범 사례가 있음으로 해서 앞으로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 자리에 오른 사람 또는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국민이 바라는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되새기고 자신이 그런 모습에 충실한지 되돌아 보게 될 수 있다. 성찰과 다짐을 통해 제대로 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굳건한 전통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고 사정기관인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이 그 직분에 충실하다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제대로 될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이번에 그걸 보여줬다. 정권 비리 수사로 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10명 가까이 기소한 것이다. 그 자체가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최고 권부 인사들의 기소가 법대로 이뤄지면서 ‘법치 수사’는 검찰 내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현 서울고검장)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으로 기소한 게 대표적 사례다. 검찰이 현직 서울중앙지검장을 기소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이성윤 기소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검찰의 악습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됐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윤석열과 최재형 두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면 직분에 충실했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으로서의 모습은 국민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설사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국민 마음속에 제 역할을 다한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으로 남기보다 전직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본래 직분을 다했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

대선 출마로 롤 모델 역할 못 하게 된다면 불행

우리나라에는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 경지에 올라 이른바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으로 꼽혔다가 정치에 뛰어들어 그 본래 이름의 빛을 바랜 사람들이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과거 안 대표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 전문가로 이름을 높였다. 이 전 총재는 법관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정치에 뛰어들면서 세상에 비친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백신 개발의 선구자, 법관의 표상으로서의 그들의 이름은 국민 기억 속에 잊혀졌다. 그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될 뿐이다.

자기 분야에서 경지에 올라 그 분야 사람은 물론 일반 국민들이 본받을 만한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 골고루 퍼져 있는 사회가 발전된 사회다. 자기 분야에서 이름 좀 높였다고 모두 정치에 뛰어들면 사회의 롤 모델(role model)이 없어진다. 권력만 판치고 롤 모델이 없는 사회는 후진 사회다.

윤석열이나 최재형이 나서서 정권 교체를 이룬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에는 대통령 후보 개인의 인기라는 인물 요인보다 민심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시대 흐름의 요인이 더 중요하다. 민심이 정권 교체를 바란다면 대통령 후보 개인의 인물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정권 교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를 바라지 않는다면 인기와 지지가 높은 인물이 나와도 정권 교체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지 후보 개인의 인물이 아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을 갖는 것도 어렵지만 제대로 된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을 갖기는 더 어렵다. 정권은 한 번 왔다 가는 것이지만, 각 분야의 롤 모델은 오래도록 국민 기억 속에 남는다. 롤 모델은 생겨나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잊히기도 어렵다. 모처럼 롤 모델이 될 만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나타났는데 정치판 뛰어들기로 그 모범 사례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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