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군주도 법 아래 있다"는 김진욱 공수처장, 그 말대로만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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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경조 기자]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1월 처장 후보로 지명된 이후 최근까지 공수처 업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의견을 밝혔다. 사람의 말은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생각은 행동을 결정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대강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겉과 속, 말과 행동이 다르기 십상이라 겉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말이 한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효한 수단임은 부정할 수 없다.

"좌고우면 않고 국민만 바라보겠다" 소신

그렇다면 김진욱 공수처장의 말에서 드러난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말은 그가 공수처장 직무를 어떤 자세와 각오로 수행하려 할지 예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김 공수처장은 지난 12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연루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돌려보내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이 구성되려면 3~4주 이상 걸린다. 수사팀도 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가 사건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봐 주기’ ‘뭉개기’ 등 공정성 논란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논란이 나오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이성윤 지검장은 친정권 핵심 검사로 꼽힌다.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기 전 자신에 대한 수사를 공수처로 넘겨달라고 검찰 수사팀에 요구했다. 자신과 대립 관계에 있는 윤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에서 수사 받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 등에서는 이성윤 지검장 수사가 공수처로 넘어가면 공수처가 수사를 흐지부지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만큼 이성윤 지검장 수사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공수처가 수사팀이 구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성윤 지검장 수사를 넘겨받아 갖고 있으면 정말로 ‘봐 주기’ ‘뭉개기’라는 비판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김 공수처장은 이런 점을 바로보고 검찰로 다시 보낸 것이다. 공수처가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는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그걸 막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지난 1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는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국가기관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정반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공수처가 현 정권 수호대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있고, 잘못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 흔들리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으며 국민만 바라보겠다”고 했다. 그는 2월 25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은 공수처의 생명줄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김 처장의 발언은 하나같이 공수처장으로서 반드시 행동에 옮겨야 할 내용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전담 수사하는 공수처장이 가슴속 깊이 새겨두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되씹어 봐야 할 것들이다.

"민주공화국에선 군주라도 법 아래 있어"

그러나 김 처장의 발언 중 특히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여기에서 기조 발언을 했는데 그 주제가 ‘민주공화국과 법의 지배’ 였다. 그는 “군주국이 군주가 법을 통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법에 의한 지배'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민주공화국은 '법의 지배'가 이뤄지는 사회”라고 했다. 그는 법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고 군주조차도 법 아래에서 법의 적용을 받는 사회, 법과 사법제도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했다.

그는 “법에 의한 통치에서는 법이 정치에 예속되지만 법의 지배에서는 법이 독립적으로, 정의의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수사기관도 법의 지배 원칙에 따라 운용돼야 한다. 공수처는 결국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은 법의 지배이고 공수처는 법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결국 공수처가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말이 된다.

민주공화국까지 들어가며 공수처의 존재 의의를 강조하는 것이 너무 거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합한 말이다. 민주주의는 잘 아는대로 국민에 의한 지배, 즉 인민주권을 말한다. 공화국은 국가 권력이 국민 전체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는 체제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국가 권력 간의 상호 감시와 견제다.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국회, 대통령, 사법부가 서로 감시하고 견제해 어느 부서도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권력을 남용하면 독재나 횡포, 부정과 부패가 발생하기 쉽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 권력 간의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면 어느 권력도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된다. 모두가 법 아래에 있게 된다. 법의 지배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 간 감시와 견제를 공화국의 원리라고 한다. 삼권 분립에 의한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니라 공화국의 원리라는 말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헌법에 최초로 구현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헌법은 제1조에서 7조까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의한 감시와 견제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헌법을 만들면서 미국의 영향을 받아 대통령제와 함께 삼권분립 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명목 상의 삼권분립만 돼 있었을 뿐 견제와 감시는 거의 없거나 미흡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좀 달라지긴 했지만 근본적 문제는 여전했다. 국회는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보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을 받들어 모시는 바람에 ‘통법부’가 되기 일쑤였다. 법과 정의를 바로세워야 할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는 손을 댈 엄두도 못 냈고 결국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 사법부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최근에는 ‘코드 사법’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권과 가까워졌다.

공수처의 미래, 김 처장 언행일치에 달렸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자를 수사하지 못하는 바람에 권력자들은 법 위에 있었다. 권력자들을 제대로 감시해 이들이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공수처다. 권력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라고 공수처에는 두 가지 제도적 장치를 뒀다. 하나는 공수처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기구로 한 점이다. 또 하나는 국가 권력을 다루는 핵심 인사들만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한 점이다. 대통령,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장·차관 및 기타 고위 공직자들이 그들이다.

이처럼 공수처는 대통령과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구성원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구다. 그래서 공수처는 권력의 감시와 견제라는 공화국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처장이 민주공화국은 법의 지배가 이뤄지는 사회이고 공수처는 법의 지배를 위한 수단이라고 함으로써 공수처를  민주공화국 실현을 위한 장치라는 취지로  한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안의 핵심을 찌른 말이다.

김 처장이 공수처장으로서 국민이 원하는 생각과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소용 없다. 앞으로 김 처장이 ‘군주조차도 법 아래에 있다’는 말 그대로 현 정권 비리를 수사하려 할 경우 온갖 정치적 압력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김 처장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소신을 밝혔다.

그는 ‘3년 임기를 지키지 못하도록 정치적 외압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초대 공수처장으로서 임기를 지키지 않으면 제도 안착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를 지키겠다.”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김 처장은 ‘청와대에서 전화가 오면 받을 건지, (청와대와 연결된) 핫라인을 둘 것인지,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 측으로부터 비공개로 티타임(차 한잔)을 하자고 하면 응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대통령과의 핫라인은 현재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식사나 티타임 요청은 (청와대에서) 없으실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락도 주고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김 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잘 알기에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초대 공수처장으로서 공수처가 국민 신뢰를 받고 헌정 질서에 단단히 뿌리 내려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의 헌법 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처장이 그동안 해온 말대로만 행동하면 그 다짐이 전부는 아니라도 상당한 정도는 실현될 것이다. 모든 것은 김 처장 본인에게 달려 있다. 김 처장의 말이 교과서를 그대로 옮긴 백면서생의 말에 불과한 것인지, 벼리고 또 벼려 뼛속까지 스며 있는 자신의 결의를 천명한 것인지는 멀지 않아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