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공수처 이어 이번엔 '수사청' 추진…수사 기관 남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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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18 12:11
수정 : 2021-02-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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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문제로 시끄럽더니 이번엔 ‘수사청(중대범죄수사청)’ 문제로 또 한번 시끄러워질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20명이 지난 8일 수사청 설치 법안을 국회에 냈다. 황운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도 가세했다. 이들은 수사청 설치를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은 ‘검찰 개혁 완결판’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건다고 해도 국가 수사기관을 이렇게 쉽게, 그리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민주당 의원들, 중대범죄수사청 법안 발의

수사청 설치 법안의 핵심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수사청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사와 공소 업무, 즉 경찰이나 검찰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저지른 범죄도 수사청 수사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6개 범죄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범죄와 대형 참사 같은 특별 사건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서 장차관, 국회의원, 판검사, 군 장성, 청와대 비서관, 시·도지사와 교육감,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 등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권은 공수처로 넘어갔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6개 범죄 외에 기타 모든 범죄의 직접 수사권은 경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6개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권을 갖고 있다. 살인·강도·강간 같은 일반 사건은 수사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 6개 범죄 수사권마저 수사청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직접 수사권이 다 없어진다. 기소와 공소 유지만 전담하는 기관으로 남는다. 검찰을 이런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수사청 설치의 목적이다.

앞서 작년 12월 29일 황운하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4명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소권과 공소 유지권만 갖는 ‘공소청’을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수사청 설치는 궁극적으로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을 설치하기 위한 중간 절차인 셈이다.

황운하, 최강욱 의원 등이 수사청 설치를 주장하면서 내건 명분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한 검찰 개혁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며 이를 바로잡으려면 검찰 수사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 의원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검찰은 전세계에 없다”면서 “수사기관을 다원화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운하, 최강욱 의원등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양대 과제는 공수처 설치와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다.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법안을 올해 상반기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내용의 ‘서약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조국 전 장관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수사청 설치는 검찰 수사권 폐지가 최종 목표”라며 “공수처, 검찰청, 수사청, 경찰청 분립 체제가 되길 기원한다”고 썼다.

'수사· 기소 분리로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가 목적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한번 수사에 착수하면 어떻게 해서든 기소해야 체면이 산다고 여길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될 수 있다. 황운하 의원은 “별건 수사, 먼지떨이 수사, 짜맞추기 수사, 표적 수사, 과잉 수사’를 그 부작용으로 열거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의 유일한 또는 가장 큰 원인이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황 의원이 나열한 부작용은 기소권은 없고 수사권만 가진 경찰에서도 나타나는 병폐다. 경찰이 표적 수사, 과잉 수사, 짜맞추기 수사로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수십년 감옥살이를 하게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을 복역한 윤성여씨(53)가 대표적 사례다. 윤씨는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지면서 재심 끝에 32년 만인 작년 12월 무죄 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었다. ‘낙동강변 강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가 28년 만인 지난 4일 무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 2명도 있다.

경찰 수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우선 ‘인권 수사’라는 개념이 거의 없거나 아주 약하던 시대 상황이 그 하나다. 그때는 경찰의 불법 연행, 고문,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다. 변호인 조력권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때였다. 게다가 유전자(DNA) 분석이나 폐쇄회로 티브(CCTV) 같은 과학 기술과 장비도 없었다. 피의자 인권 보호 의식이나 과학 수사 수준이 낮으니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정해 놓고 수사하는 표적 수사, 짜맞추기, 과잉 수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인권 침해 수사는 경찰만의 일도 아니었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는 기무사령부나 안기부에서도 밥 먹듯 일어났다. 기무사나 안기부 역시 경찰처럼 기소권은 없고 수사권만 갖고 있었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야 부작용이 없어진다면 수사권만 있고 기소권은 없는 경찰, 기무사, 안기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기소권 없이 수사권만 가진 경찰에서도 부작용 속출

결국 중요한 것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아니다. 인권 침해 수사를 막으려면 수사기관의 인권 의식 향상, 수사기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통제, 피의자의 변호인 조력권 실질화를 위한 제도 정비와 강화, 수사기관 내부의 불법 수사 관행에 대한 감시와 통제 등 여러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럼에도 마치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지 않아서 모든 문제가 생기는 듯 몰아가는 것은 정치적 선동은 될 수 있지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인 분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전세계에 없다는 주장도 정확한 말은 아니다. 지금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가족 및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사업에 거액을 대출해준 은행과 보험사가 수사 대상이다. 트럼프가 자산을 부풀려 사기 대출 받았는지, 은행과 보험사가 짜고 대출해 준 것은 아닌지를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트럼프 측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의 성관계를 주장하는 여성 2명에게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준 사건을 수사했었다. 그 과정에서 대출 사기 의혹이 드러나자 수사를 확대한 것이다. 우리로 치면 ‘별건 수사’에 해당할 수 있지만, 이게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고 있다. 한편 검찰은 트럼프 장녀인 이방카가 자신 소유 컨설팅 회사를 통해 트럼프 그룹으로부터 74만7000달러(8억여원)을 자문료 명목으로 받은 것도 수사 중이다.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위장 증여인지가 수사 대상이다. 우리의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격인 뉴욕남부연방검찰청 검사는 트럼프 측근들을 수사하다가 작년 6월 해임됐다. 이 검사는 연방 법무부가 사임하라고 압박하자 “차라리 해임하라”고 맞서기도 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할 수도 있다. 제도는 만들기 나름이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을 여러 개 만든다고 해서 수사기관끼리의 견제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견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견제 장치가 없으면 각 수사기관이 자기 권력을 맘껏 행사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사기관 간 견제 장치는 ‘검찰 개혁’을 거치면서 거의 모두 없어졌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이 폐지됐다. 경찰에 수사 종결권도 주어졌다. 이제 경찰은 검찰 통제를 받지 않는다. 공수처는 처음부터 검찰 지휘 통제를 받지 않게 돼 있다.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에 대해선 수사권 외에 기소권까지 갖고 있다. 신설을 추진하는 수사청도 검찰 수사 지휘를 받지 않는다. 이제 경찰, 공수처,수사청은 각자 자기 영역 안에서 다른 기관 통제를 받지 않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권력이 분립되기는 했지만 권력 간에 견제가 이뤄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 보복 감정으로 '검찰 해체' 주장하나

검찰 수사권을 없앤다고 해도 굳이 수사청이라는 별도 수사기관을 또 만들 필요가 있을까.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인 6개 범죄에 대해선 현재 경찰도 수사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수사청을 만들 필요 없이 경찰에 맡기면 된다. 아니면 공수처에 맡겨도 안 될 게 없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에서 ‘고위 공직자’를 빼고 그냥 ‘수사처’로 이름만 바꾸면 된다. 이렇게 손 쉬운 길이 있는데 수사청을 꼭 만들어야 할 이유가 뭔가. 수사청 운영에 들어갈 예산은 얼마나 될 것인가.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만 있을 뿐 아직 검사와 수사관도 없다. 수사할 준비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어 과연 별 문제 없이 운영될지 불확실하다.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자리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사청이라는 또 하나의 수사기관을 만들겠다고 하니, 국정 운영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가.

수사청 신설과 검찰 수사권 폐지를 주도하는 황운하 의원과 최강욱 의원, 여기에 박수를 치는 조국 전 장관은 공통점이 있다. 검찰에 의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최 의원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수사청 설치와 검찰 수사권 폐지에 앞장서는 것을 검찰에 대한 ‘보복’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개인의 보복 감정으로 국가 수사기관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한다면 그런 나라를 과연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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