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공수처와 경찰에 수사권 넘기는 검찰, 기소권으로 정면 승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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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2-29 16:51
수정 : 2020-12-3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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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2021년 새해는 검찰이 국민에게 진짜로 그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할 때다. 현 정권이 도입한 ‘검찰 개혁’ 조치들로 검찰은 새해부터 수사권을 대부분 경찰이나 공수처에 넘기고 기소권만 갖게 된다. 기소권은 검찰만이 갖고 있는 검찰의 독점적 권한이다. 검찰은 이제 수사 기관이 아닌 기소 기관으로 그 본질적 성격이 변했다. 권력형 비리 같은 거악(巨惡)을 수사하는 것은 더 이상 검찰의 본업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소권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행사해 정의를 세우는 것이 검찰의 생명이자 존재 이유가 됐다. 구체적으로는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권을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기소권을 통해 견제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맡게 됐다.

검찰, 직접 수사 건수 84% 줄고 경찰 지휘권도 없어져

검찰 기능의 변화는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다. 변화는 두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고, 또 하나는 공수처 출범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일반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은 대부분 경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6대 범죄뿐이다.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범죄와 대형 참사다.

이들 범죄라고 다 수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직자의 직급과 범죄 액수에 따라 수사 대상이 제한된다. 4급 이상 공직자, 3000만원 이상의 뇌물 사건, 5억원 이상의 사기·횡령·배임, 5000만원 이상의 알선수재·배임수증재·정치자금 범죄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은 경찰이 수사한다.

공직자 범죄의 경우 4급 이상이라고 하지만, 국회의원,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판사와 검사, 3급 이상 공무원,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 등 고위 공직자 범죄는 공수처에 우선적인 수사권이 있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공직자 범죄는 중앙 부처 과장급인 4급을 빼고는 거의 없는 셈이다.

6대 범죄 외에 일반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는 소액 사기 사건, 폭행이나 상해, 강도와 절도, 살인, 강간, 부정 식품, 인터넷 음란물, 아동 학대 사건 같은 일반 범죄는 모두 경찰이 전담 수사하게 된다. 법무부는 2019년 기준으로 검사 직접 수사 사건이 총 5만여 건에서 8000여 건으로 약 84% 이상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수사권만 경찰에 넘긴 게 아니다.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도 없어졌다. 이제 경찰은 검찰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하게 됐다. 또한 경찰은 1차적인 수사 종결권도 갖는다. 전에는 모든 사건에 대해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검찰이 판단했다. 혐의가 인정되면 기소하고 인정되지 않으면 불기소했다. 기소 또는 불기소 결정이 나면 그 사건 수사는 종결된다. 이런 수사 종결권을 검찰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해부터는 경찰이 혐의 인정 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한 뒤 무혐의라고 판단하는 사건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검찰 수사권은 대폭 축소되고 경찰 수사권은 크게 늘어났다. 그럼 검찰은 무슨 일을 하나? 기소와 그에 따른 공소유지다. 기소란 유죄로 인정되는 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것을 말한다. 공소 유지란 재판에서 피고인이 유죄임을 입증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검찰은 경찰이 수사해서  보낸 사건을 재검토해 기소할지 아닐지를 결정하고, 기소한 뒤에는 유죄임을 입증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기소와 공소 유지가 검찰 업무의 대부분이자 본질이 된다. 그만큼 검찰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기소와 공소 유지에 과거보다 더욱 더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기소와 공소 유지의 핵심은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게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은 억울함을 벗게 해주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한데도 검찰이 판단 잘못으로 기소를 하지 않거나 재판에서 유죄 입증을 하지 못해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다면 정의는 설 수 없다. 반대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데도 검찰이 오판으로 기소를 하면 당사자는 재판을 받는 동안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설사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겪은 고통을 씻을 수는 없다. 이 또한 정의가 아니다.

검찰이 기소를 잘못한 사례 중 하나가 여덟 살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이다. 조두순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2020년 12월12일 출소했다. 조두순은 이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12년형만 받게 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검찰이 기소할 때 법 적용을 잘못한 탓도 컸다.

 기소권 적정한 행사로 국민 지지 받는 게 살 길 

조두순 사건 발생 5개월 전인 2018년 7월 13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강간 상해를 저지른 사람을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됐다. 그런데 검찰은 조두순을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형법상 강간상해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형법상 강간상해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반면 성폭력처벌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상해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하한선이 더 높다. 조두순 사건 피해자는 사건 당시 12세 8개월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2009년 12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상해 법정형에 무기징역이 빠져 있어 오히려 형법을 적용해야 더 무겁게 처벌됐다”며 “이전 관례에 따라 처리하다보니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관례대로 형법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만약 검찰이 성폭력특별법을 적용해 기소했더라면 조두순의 형량은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기소를 잘못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한 사례도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잠수사 공모씨 사례다. 공씨는 함께 수색에 참여했던 잠수사 이모씨가 사망한 사건에서 민간 잠수사 감독관으로서 안전사고 예방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 (업무상 과실치사)로 2014년 8월 기소됐다. 공씨는 2년 5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2017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씨의 사망 당시 공씨가 현장 관리 감독 책임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씨를 민간 잠수사 감독관으로 인정할 근거 서류가 없고, 법적인 관리·감독 의무는 구호활동을 지휘하는 구조본부의 장에게 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대검찰청이 2017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무죄가 확정된 사건 7832건 중 검찰이 ‘수사 미진’ ‘법리 오해’ ‘증거 판단 잘못’ 등 검사 잘못으로 무죄가 선고됐다고 판단한 사건은 1295건이다. 전체의 16.5%다. 2012~2016년까지 5년 동안 검찰 스스로 수사가 부족하거나, 법리를 오해해 잘못 기소했다고 판단한 사건은 매년 1000여 건에 달한다. 무죄를 받은 사람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겪었을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검찰이 기소권을 더욱 철저히 행사해야 할 분야가 또 하나 있다. 공수처 수사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 범죄를 수사한 뒤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 검찰은 검토를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공수처가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에 대해 검찰보다 우선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공수처는 검찰이 진행 중인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를 공수처로 넘기라고 요구할 수 있다. 검찰은 공수처 요구에 따라야 한다. 검찰은 고위 공직자 범죄를 알게 된 경우 공수처에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이때 공수처는 검찰에 수사에서 손 떼고 사건을 공수처로 넘기라고 요구할 수 있다. 검찰은 이 요구도 따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이 갖고 있던 거부권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여당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공수처 검사나 수사관도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벌써부터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현 정권 비리를 적당히 덮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현 정권 실세들의 비리를 수사하게 될 경우 공수처가 넘겨받아 뭉갤 수 있다는 것이다. 탈원전과 관련한 산업자원부 공무원들의 문서 폐기 사건, 울산시장 선거 비리 사건 등이 그런 예다.

공수처 '정권 편향' 막을 장치도 검찰 기소권뿐

공수처가 사건을 뭉개려 할 경우 그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검찰의 기소권이다.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을 검찰에 넘기면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공수처의 ‘뭉개기’를 통제할 수 있다. 공수처가 현 정권 비리를 유죄 의혹이 큰데도 적당히 수사해 검찰에 송치할 경우 검찰이 보강 수사해 기소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이 이런 통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공수처의 있을지 모를 전횡을 막을 수 없다. 그런 검찰은 있으나마나다.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은 현 정권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추진했다. 검찰 수사권을 경찰과 공수처에 넘겨 검찰 권력을 분산한 것이 핵심이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에 1차적 수사 종결권을 준 것에 대해선 비판도 많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약화시켜 경찰 권력의 오남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공수처 신설에 대해서도 ‘정권 옹호 수사 기관’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더 근본적으로 ‘검찰 개혁’이 그 본래의 뜻과 달리 정치 구호와 정쟁거리로 전락한 문제도 있다. 현 정권이 윤석열 총장을 찍어내려 하면서 그 명분으로 검찰 개혁을 앞세운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윤석열 지지=검찰 개혁 반대’, ‘윤석열 반대=검찰 개혁 지지’ 라는 식으로 진영 논리에 따라 검찰 개혁을 보는 눈이 양극화됐다. 정치 논리로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다 보니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법에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검찰 개혁 법들이 새해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경찰과 공수처가 제도 개혁의 취지에 맞게 그 권한을 잘 행사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기소권을 적절하고 올바르게 사용해 기소권 독점의 부작용과 폐해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기소권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나아가 경찰과 공수처를 견제하고 통제해 사법 정의가 바로 서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새로운 개혁 시대 검찰의 존재 이유이고 목적이다. 검찰은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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