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 선정 ‘2020 주요 판결’

  • 통상임금 기준 변경, 전교조 합법화 등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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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2-22 08:53
수정 : 2020-12-2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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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통상임금 산정시 연장근로, 실제 근무시간으로 계산해야“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 연장·야간근로 시간도 실제 근로시간으로 따져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연장·야간근로 수당을 산정하기 위해 통상임금에 적용하는 가산율(150% 이상)을 연장·야간근로 시간 계산에도 적용하게 함으로써 시간급 통상임금을 낮추는 효과를 유발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기존 판례가 8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월 22일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A씨 등이 B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한) 약정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한 시간 수 자체로 계산해야 한다"며 "가산수당 산정을 위한 가산율을 고려해 연장 및 야간근로시간 수를 따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 등은 B사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이후 "기본시급 및 일당만으로 시간급 통상임금을 계산했을 뿐 근속수당, 승무수당 등 고정 임금들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 퇴직금 등을 재산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본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주로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가 주요 쟁점이 됐으나 이번 사건에서는 총 근로시간을 어떻게 따질지가 쟁점이 됐다.

시간급 통상임금은 총 통상임금을 총 근로시간으로 나눠 산정하기 때문에 '분자'인 통상임금이 클수록, '분모'인 총 근로시간이 작을수록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2012년 선고됐던 기존 판례는 '야간·연장근로 1시간'을 통상임금 계산 시 '1.5시간'으로 쳐왔다.

근로기준법상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연장·휴일 등 근무를 할 경우엔 통상임금에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라는 규정을 근로시간에도 적용해온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시간 수를 확정할 때 가산수당 산정을 위한 가산율을 고려해야 할 법적인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기존 판례에 따르면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한 근로는 실제 가치보다 더 '적게' 산정이 되는 셈"이라며 "이는 연장 및 야간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야간·연장근로 1시간'은 '1.5시간'이 아닌 '1시간'으로 수정함으로써 통상임금 계산식의 분모를 줄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 전교조 7년만에 합법화 길 열려…대법 "법외노조 처분 위법“

해직 교원이 가입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통보한 법외노조 처분이 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로써 전교조는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지 7년만에 합법노조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9월 3일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교원 노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하는 것은 단순 지위 박탈이 아니라 노조로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법외노조 통보 시행령 조항은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해 무효"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이 시행령 조항이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법외노조 통보를 했는데, 시행령 조항이 무효이기 때문에 법외노조 통보는 법적 근거를 상실해 위법"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해직교원 9명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대법원 재판은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인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교원노조법·노동조합법의 규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 대법 "부동산 이중 저당은 배임죄 해당 안돼“

부동산 저당권 설정을 약속한 뒤 다른 사람에게 저당권을 설정하게 해 계약을 위반했더라도 배임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6월 2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2016년 6월 18억원을 빌리면서 담보로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채권자에게 설정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A씨는 '경영상 판단'을 이유로 같은 아파트에 다른 명의로 4순위 근저당권을 해줬다가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를 저버리고 불법행위를 해 재산상 손해를 입힌 경우다. 이런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A씨와 채권자가 한 계약이 통상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상대방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신임 관계'가 기초가 돼야 한다.

1·2심은 A씨와 채권자 사이에 계약을 통해 신임 관계가 형성됐다고 보고 배임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와 채권자의 계약은 의무 이행을 정한 것일 뿐 신임관계에 기초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같은 논리로 A씨가 저당권 설정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담보물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더라도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제3자와 근저당권 설정을 약속해놓고 담보물을 마음대로 처분한 경우 배임죄를 인정한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서 ‘위계’의 범위 넓게 인정

자발적인 성관계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속임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7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7월 당시 14세였던 B씨를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속여 성관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A씨는 B씨에게 다른 사람의 사진을 자신인 것처럼 보냈고 사귀기로 합의도 했다. 그러던 중 A씨는 자신을 스토킹하는 여성 탓에 사귀기 어렵게 됐다면서 B씨에게 "스토킹 여성을 떼어내려면 내 선배와 성관계를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 보내줘야 한다"며 선배와의 성관계를 강요했다. B씨가 A씨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A씨는 자신이 '선배'인 것처럼 가장해 B씨를 만나 성관계를 하고 촬영까지 했다.

1·2심은 피해자가 성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스스로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이 명백한 만큼 위계에 의한 간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런 심적 상태를 이용해 간음했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A씨의 속임수는 B씨가 간음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됐다며 이를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적 자기 결정권의 행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대법, 출생등록권 첫 인정..."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는 법률로써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

아동이 태어난 즉시 출생을 등록할 수 있는 권리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대법원 결정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A씨가 딸의 출생 신고를 받아달라며 가정법원을 상대로 낸 출생신고 확인 신청 재항고심에서 출생등록 거부 결정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6월 9일 밝혔다.

A씨는 중국 국적의 여성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2018년 9월 딸을 낳았다. A씨는 바로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 아내와 혼인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아내의 여권 갱신이 불허된 상태여서 불가능했다. A씨의 아내는 중국 여권 대신 일본 정부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발급받은 여행 증명서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결국 A씨는 미혼부 혼자라도 자녀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사랑이법'에 따라 딸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가정법원에 신청했다.

사랑이법 조항으로 불리는 가족관계등록법 57조2항은 '엄마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도 미혼부 혼자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는 법률로써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라며 A씨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아이의 출생 신고가 즉시 되지 못하면 건강보험이나 아동수당 등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법 입양 등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의 사례처럼 '모(母)가 외국인으로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에 미혼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사랑이법'을 폭넓게 해석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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