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역사는 문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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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 2020-12-01 09:00
수정 : 2020-12-0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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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인이 문대통령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지 질의를 했는데, 문대통령은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대통령이 끝나고 난 이후에 좋지 않는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필자는 문대통령의 이 말이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했지만 퇴임 후에 上王으로서 정치권의 후견인 역할을 하거나 정치적 이슈에서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진정성을 최대한 善解하고 싶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문대통령이 과연 국정에 올바른 방향과 원칙을 가지고 전념하고 있는지, 임기를 마치고 별 대과없이 잊혀지는 전직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인지 새삼 의문이 든다. 그 이유는 문대통령이 집권한지 3년 반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민생은 물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와 같은 우리 헌법과 공동체의 기본적인 가치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문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민생문제를 국정철학과 이념의 문제로 접근하고 밀어 붙인 결과 정부실패를 야기하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물론 정치라는 것이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이념과 철학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생문제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와 차별의 원인과 영향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시장에서 수용 가능한 유연한 정책을 수행하면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헌법은 사회정의와 실질적 평등의 실현을 주문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대원칙을 존중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합의과정을 전제로 한다.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보완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자신들의 敎條的 신념을 고집하는 것은 정치를 빙자한 甲질에 다름 아니다. 결국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강사법이 그러했고 그 정책의 폐해와 민생의 어려움은 고용, 부동산, 조세저항 등에서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민생의 어려움과 함께 우리 사회는 심각한 법치의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법치주의를 “법대로 하자”는 형식논리로 이해하고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오늘날 법치주의는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과잉행사를 금지하고 기존의 관례를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적법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그 핵심이기 때문에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법치는 참으로 통치하기 까다로운 시스템이다. 항상 국가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는지, 법에 정해진 절차를 스스로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마치 국민을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법무부장관이 보여준 너무나도 많은 사례들은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 남용과 적법절차의 무시 그 자체이며, 결국 그 역사적 평가와 책임은 장관의 인사권자이며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문대통령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느 선진국가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우리처럼 이렇게 국정의 중심에 서서 국민의 피로감을 고조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정을 법과 제도, 시스템으로 운영하지 않고 사적 감정과 절차 무시로 일관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법치가 인치에 피를 흘린다”(The Rule of Law bleeds into the Rule of Men)고 표현하지만 우리식으로는 이것이 바로 권력의 사유화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 주소는 또 어떤가? 의회민주주의와 같은 대의제 정치의 핵심은 다수와 소수의 협치,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가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이념적으로 고착화된 우리 정치지형에서 여당이 소수 야당을 설득하고 타협에 의한 협치를 한다는 것은 至難한 일이며, 그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소수를 아우르고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기술이며, 민주주의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다. 그런데 여당이 야당을 적으로 취급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의 심기만 살피고 있다면 정부와 국회간의 권력분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여당 내에서 쓴 소리도 나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조차 질식한 상태에서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민주정치를 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은 정당인이지만 그 이전에 국민의 대표이며, 청와대와 여당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헌법이 요구하고 있지 않는가. 책임정치의 선봉에 선 문대통령은 부동산을 비롯한 민생문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법무부장관의 행태, 가덕도 공항과 같은 정부신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왜 책임지려 하지 않는가? 도대체 公僕인 장관과 총장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 앞에서 이렇게 예의도 없이 오랜 동안 싸움을 벌이고 公僕長인 대통령이 이를 수수방관한단 말인가. 결국 퇴임 후 역사가 문대통령이 아름답게 잊혀진 전직 대통령으로 기억하기에는 민생, 법치, 민주주의 모두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지금이라도 문대통령과 정치권이 자기를 성찰하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진로를 수정하도록 바라고 또 바란다.

그렇지만 솔직히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정치라는 것이 곪을 대로 곪아도 스스로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대로 가다가 끝을 보기 때문이다. 결국은 성숙하고 깨어 있는 국민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조금 귀찮더라도 선거 때 후보자들과 정당의 공과를 꼼꼼히 따지고 잘못한 정치세력을 엄중하게 심판해 주는 일만 남았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공복들을 해고하고 국민을 위해서 헌신할 자세를 가진 새로운 대리인들과 정치적 사회계약을 맺는다. 그러니 문대통령은 이제라도 극성 지지자들보다는 전체 국민을 뜻을 받들고 순리에 따를 때 기사회생하여 후한 역사적 평가를 받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진=김성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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