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웹 음란물 손정우, 왜 기필코 미국 송환 피하려 하나

  • 미국은 형량 엄청 무거운 데다 교도소 내 집단 따돌림 우려도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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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3 08:00
수정 : 2020-06-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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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너무나 부끄럽고 염치가 없지만 만약 대한민국에서 재판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중형이 다시 내려져도 달게 받겠습니다. 가족이 있는 이곳에 있고 싶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씨가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범죄인 인도심사 두 번째 심문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지난달 열린 첫 심문에 불출석했던 손씨는 이날 황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해 미국 송환을 막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한 것이다. 방청석에는 손씨의 가족들도 앉아있었다.

손씨는 지난 2015년 6월 특수 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접속이 가능한 이른바 ‘다크웹’에서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를 개설해 지난 2018년 2월까지 운영했다. 손씨는 이 사이트에서 약 25만여건의 영유아와 아동의 성을 착취한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으며 특히 자료에는 생후 6개월 된 신생아를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씨가 운영한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를 돈을 내고 이용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3344명에 달했으며 그 중 310명이 적발됐다. 국내 이용자는 228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손씨는 재판에 넘겨져 아동 성착취물 유포 혐의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확정 받고 지난 4월 복역을 마쳤으나 현재까지 수감돼있다. 미국 법무부가 손씨의 출소를 앞두고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른 강제 송환을 요청해 한국 법원이 손씨에게 미국 송환을 위한 인도구속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다.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은 "범죄인 인도 청구를 받은 국가의 법원이 해당 범죄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미 유죄 또는 무죄 선고를 한 경우에 범죄인 인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범죄를 다시 처벌할 수 없다는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은 범죄인 인도 조약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지난 2018년 미국 연방대배심은 손씨를 아동 음란물 광고와 수입, 배포, 자금세탁 등 9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 검찰은 손씨가 받고 있는 혐의 중 암호 화폐를 이용해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은닉한 점에 대해서는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 손씨를 송환해 달라는 것이다. 범죄수익은닉과 관련된 죄는 미국 내에서 재판을 거쳐 처벌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대해 법무부는 손씨의 범죄 혐의 중 국내 법원의 유죄 판결과 중복되지 않는 '국제자금세탁' 부분에 대해 인도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손씨의 부친은 손씨가 한국에서 처벌 받게 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아들이 동의 없이 나의 정보로 가상화폐 계좌를 개설하고 범죄수익금을 거래·은닉했다”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손씨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사실상 손씨를 한국 법원에서 형사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손씨 측은 왜 그토록 미국 송환만은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

우선 형량 차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르면 범죄수익 사실을 가장하거나 은닉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자금세탁 규모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범죄수익이 50만 달러(약 6억680만원) 이상인 경우 20년 이하, 50만 달러 미만이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손씨는 자신의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이용자들로부터 약 4억원 상당의 암호 화폐를 받아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손씨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자금세탁 혐의만으로도 최대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이중처벌금지 원칙에도 불구하고 손씨가 아동 음란물 관련 혐의로 다시 처벌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검찰이 한국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아청법 위반)는 제외하고 미국에 있는 서버를 이용해 미국인에게 아동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만 떼어내 재판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 법원은 손씨의 공유 사이트에 아동 음란물을 올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영국 국적 남성에 대해 징역 22년을 선고한 바 있다. 또한 아동 음란물 수령 및 돈세탁 혐의를 받는 40대 미국인 남성은 징역 15년 및 종신 보호관찰형을 선고받았다. 만일 손 씨가 미국에서 아동 음란물 판매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경우 손씨는 미국 법원으로부터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더 중요한 이유는 미국과 한국이 실체적 경합범을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체적 경합범이란 동일인이 저지른 두 개 이상의 범죄가 아직 재판을 받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 법원의 경우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한 피고인의 형량을 산정할 때 피고인이 저지른 여러 가지 범죄 중 법정형이 가장 큰 죄의 형에 1.5배를 가중하는 이른바 ‘가중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해 사망 501명, 부상 937명의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고(故) 이준 전 백화점 회장에겐 징역 7년 6월이 선고됐다. 또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의 경우 사망 192명, 부상 142명의 사상자를 야기한 기관사에게 금고 5년이 선고됐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피고인이 저지른 각각의 범죄마다 형량을 선고한 후 그 형량을 모두 합산하는 이른바 ‘병과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피고인에 대하여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미 연방검찰은 손씨를 아동음란물 광고 음모와 광고, 아동 음란물 제작 및 미국 수입, 아동 음란물 유통과 유통 음모, 국제 자금 세탁 등 총 9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만일 손씨에게 적용된 9개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면 각각의 형량을 모두 더할 수 있어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교도소와 달리 미국 교도소는 아동성범죄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문화가 있다. 실제 손씨도 이러한 미국 교도소 분위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교도소는 일과 시간에 다른 재소자들과 접촉이 자유롭다. 또한 교정당국이 재소자가 어떤 죄로 수감됐는지를 밝히지는 않지만 새로 들어온 수형자에 대한 범죄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 교도소와 달리 전화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 판결문이나 언론 보도 검색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그 결과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재소자는 다른 재소자들에게 집단 구타로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수감된 펀드매니저 출신 제프리 엡스타인은 다른 재소자들의 집단 구타와 괴롭힘으로 인해 교도소 내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날 심문을 마친 뒤 손씨의 송환 여부를 밝힐 예정이었으나 결정을 내달 6일로 연기했다. 재판부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손씨는 원래 검찰이 인도구속영장을 집행한 지난 4월 27일로부터 두 달이 되는 이달 말에 구속 기간이 끝나지만, 인도구속영장에 따른 구속기간이 연장돼 오는 8월 말까지 구속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만약 다음 달 7일 재판부가 미국 송환을 결정하고 법무부 장관이 승인할 경우 손씨는 한 달 내로 미국으로 송환된다. 현행법상 범죄인 인도 심사는 단심제로 규정해 불복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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