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묻지마 폭행' 영장 또 기각, 피해자 인권은 누가 보호하나

법원, '적법 절차·불구속 수사 원칙' 들어 연이어 기각

피해자 가족 "우리는 잠도 못자고 무서움에 떠는데…"

유죄 인정 땐 '솜방망이' 아닌 엄중 처벌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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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피의자 이모씨(32)에 대한 구속영장이 또 기각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이씨가 새삼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4일  '위법한 체포'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데 이어 두 번째 기각이다. 잇따른 영장 기각은 우리 형사사법체계의 운영과 관련해 중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가해자 인권은 법원이 적법 절차 원칙이나 불구속 수사 원칙 등을 내세워 보호하는데, 피해자 인권은 누가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다. 

범죄 용의자라고 해서 수사기관이 함부로 잡아갈 수 있다면 그건 정의가 아니다. 그러나 무고한 시민들이 범죄에 떨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것도 정의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이 두 가지 정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법원, 30대 폭행 피의자 구속영장 두번째 기각

이씨는 지난 5월 26일 낮 1시50분쯤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한 번 본 적도 없는 30대 여성을 폭행했다. 피해자는 가만히 서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이때 이씨가 다짜고짜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두르고는 곧장 현장을 벗어났다. 피해자는 왼쪽 눈가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골절되는 상처를 입었다. 피해자는 벌건 대낮에 인파가 많은 철도역 대합실에서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다.

국토부 소속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지난 6월 2일 오후 7시15분쯤 서울 동작구 이씨 자택에서 이씨를 긴급체포한 뒤 검찰을 통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철도경찰은 체포 당시 이씨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파악한 상태였으며, 주거지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수차례 두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씨가 나오지 않았고, 이후 전화를 걸었으나 벨 소리는 나는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이씨를 긴급체포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4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철도경찰은 보강 수사를 벌인 뒤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런데도  법원이 또 기각한 것이다. 이번에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김태균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 외에 "이번 범행이 여성혐오에 기인한 무차별적 범죄라기보다 피의자가 평소 앓고 있던 조현병 등에 따른 우발적, 돌출적 행위로 보이고,  이씨와 그 가족들은 재범방지와 치료를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증거나 도주 우려가 없으면 구속하지 말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 원칙을 따른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1차로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적법 절차 위반을 영장 기각 이유로 들었다.  김 부장판사는 "긴급체포 제도는 영장주의 원칙에 대한 예외인 만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한해 허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의자 이씨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피의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즉시 주거지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긴급체포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잠 자는 사람 긴급체포는 불법 체포다", "도주 우려 없다" 

 김 부장판사는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 논리대로라면 경찰이 먼저 체포 영장을 신청하고, 영장 발부를 기다리는 사이 이씨가 집을 나와 도주하려 했다면 그때 긴급체포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절차상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 했다. 주거의 평온은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고 따라서 범죄 용의자라도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기본권을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신체의 자유는 모든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수사기관은 물론이고 타인들한테도 함부로 끌려가거나 잡혀가지 않을 권리가 신체의 자유의 핵심이다. 우리 헌법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면서 누구든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규정에 따라 형사소송법은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를 구속 또는 체포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과거 유신시대나 전두환 군사정권 때는 범죄 용의자는 물론이고 멀쩡한 사람도 경찰, 검찰, 안기부, 보안사령부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일부는 모진 고문을 당해 숨지거나 몸이 불구가 됐다. ‘임의 동행’이라는 이름의 강제 연행이 횡행했다. 수사기관이 범죄 용의자나 참고인을 강제로 연행하면서 겉으론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수사기관의 요구에 동행하는 것처럼 하는 게 임의 동행이다. 반정부 민주화 운동 사건 연루자는 물론이고 강력 사건 연루자들도 불법 연행되거나 임의동행 방식으로 잡혀갔다.

‘주거의 평온’ 역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우리 헌법 제16조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거의 자유를 침해하려면 적법 절차에 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거의 평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끔찍한 경우를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밤에 가족들과 집에서 쉬고 있는데 건장한 남성 몇 명이 갑자기 들이닥쳐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가족을 강제로 끌고가려 한다든지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고 상상해 보라. 과거 유신이나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적법 절차 존중', '불구속 수사 원칙'은 민주화의 산물이지만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은 체포나 구속과 압수수색, 임의 동행이라는 이름의 강제 연행이 금지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다. 이제 불법 체포나 구속, 강제 연행, 임의동행은 거의 없다. 불구속 수사와 불구속 재판 원칙도 민주화 이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된 요즘에는 수사기관이 과거처럼 대놓고 법을 위반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수사는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이라 체포나 증거 수집 과정 등에서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늘 있다. 수사기관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만든 장치가 적법 절차다. 수사기관이 적법 절차 원칙 및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는 것은 법원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긴급 체포 과정의 불법성 또는 증거와 도주 우려 없음을 이유로 이씨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그러나 적법 절차나 불구속 수사 원칙만 강조하다 보면 범죄 통제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 범죄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 안전과 안녕이 무너진다. 사람들이 범죄 공포에 떨게 된다. 범죄 용의자가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신체의 자유와 주거의 평온을 침해받아서는 안 되듯, 일반 시민들도 범죄자로부터 그런 기본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서울역 사건에서 피해자는 범죄자로부터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했다. 눈가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골절된 게 그것이다. 불법적인 체포나 구속만이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타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기 신체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신체의 자유다.

영장 기각 뒤 피해자 가족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영장 기각을 비난하며 묻지마 폭행 범죄에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냈다. 피해자 가족이라고 밝힌 SNS 계정 운영자는 “분노가 더욱더 차오른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잠도 못자고 불안에 떨며 일상이 파괴됐는데, 가해자의 수면권과 주거의 평온을 보장해주는 법이라니”라고 한탄했다. 이번 사건 피해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성채라는 아름다운 말과 주거의 평온이라는 안락한 단어가 가해자를 위해서 이렇게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시민들도 "폭행범을 풀어주다니 비슷한 범죄가 생겨 또다른 피해자가 나올까 우려된다" , "기차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세상이라니, 무서워서 땅만 보고 다녀야할 판"이라고 했다고 몇몇 언론이 보도했다.

이처럼 적법 절차 및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과  범죄 통제는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자만  따지면 범죄를 응징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범죄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느라 공동체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 반면에 범죄 통제만 중시하면 불법 체포나 구속, 가혹행위 같은 수사기관의 불법 행위가 만연할 수 있다. 공동체의 안전은 지킬 수 있겠지만 범죄 용의자의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적법 절차 원칙 및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과  범죄 통제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다.  두  원칙을 존중하되 유죄가 인정되면 엄중히 처벌하는 게 그것이다. 범죄에는 반드시 상응하는 죗값이 따른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범죄를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솜방망이 판결'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유죄가 인정돼도 실형보다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실형의 경우에도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이런 물러터진 형량으론 범죄를 막을 수 없다.

◆유죄 인정 땐 엄중 처벌 뒤따라야 '진짜 정의'

대법원이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제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13만9905명 중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이 8만70명이다. 절반이 넘는 57.2%나 된다. 항소심(제2심)에서도 1만7575명 중 40.3%인 7078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10명 중 5명이 집행유예를 받고, 실형을 받은 사람들도 2심으로 가면 다시 10명 중 4명이 집행유예를 받는 것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 중 무기(29명)와 10년 이상은 506명에 불과하다. 1년 이상 3년 미만이 2만7493명(19.6 %)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1년 미만 2만6630명(19.0 %)이다. 징역형을 받은 사람 중 95.8%가 집행유예 또는 3년 미만의 가벼운 형을 받은 것이다. 죄의 종류에 따라 법정형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형량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2심에서의 형량 깎아주기도 문제로 꼽힌다. 2심이 1심 형량을 파기하고 형량을 깎아주는 것을 말한다. 2심의 1심 파기율은 최근 5년(2014년~2018년) 평균 35.2%다. 1심 판결 10건 중 3.5건이 파기되는 것이다. 1심 파기율은 전보다 줄어들고 있지만 미국의 9%나 일본의 14~15%와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1심의 유죄를 무죄로, 또는 무죄를 유죄로 파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형량을 깎아주는 경우가 많다. 오래 전 통계이지만 1심을 파기한 사건의 90%가 형량을 깎아준 것이라는 통계도 있었다.

오죽하면 대법원이 잊을 만하면 '전국 형사항소심 재판장 회의’나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를 열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심 형량을 존중해 주라고까지 할까. 2심의 형량 깎아주기는 전관예우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봐주려고 형량을 깎아준다는 것이다.

서울역 사건 피의자 이씨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두 번이나 영장이 기각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에 이씨가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다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한 형을 선고해야 한다. 수사기관의 적법 절차 또는 및 불구속 수사 원칙 위반 여부를 철저히 감시하되 죄가 인정되면 무겁게 처벌하는 게 사법부의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 범죄 용의자 인권도 보호하고 범죄로부터 시민들도 보호할 수 있다. 가해자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똑같이 공동체 안전과 피해자 인권도 보호하는 것이 진짜 정의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