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민식이법' 개정 주장, 조목 조목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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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4 15:25
수정 : 2020-05-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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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


‘민식이법’을 개정하라는 주장이 인터넷 등에서 잇따르고 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어린이(13세 미만을 지칭)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는 법이다. 개정론자들은 실수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어린이 보호를 내세워 과잉 처벌하는 등 민식이법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민식이법 논란은 겉으론 몇 개 법 조항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교통사고는 다른 사고와 달리 특별하게 취급하는 게 옳으냐, 특별하게 취급해야 한다면 얼마나 특별하게 취급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안전의무 기준 애매하고 과잉 처벌" 비판 잇따라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차에 치여 숨진 아홉살 김민식군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3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내용은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을 일부 개정한 것이다. 도로교통법은 모든 스쿨존에 속도 감시 카메라와 횡단보도 신호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논란이 되는 것은 특가법 신설 조항이다. 이 조항은 스쿨존에서 안전 의무 위반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13세 미만 어린이를 숨지게 하면 무기징역이나 3년 이상 유기 징역(유기 징역의 상한선은 30년임)으로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1년~15년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민식이법 개정론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특가법 조항을 문제 삼지만 핵심적인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안전 의무 위반 기준의 애매성이다. 이들은 과속이나 신호 위반처럼 안전 의무 위반이 명백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 경우 운전자가 안전 의무 위반인지 아닌지를 놓고 힘겨운 법정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자칫하면 전방 주시 의무 태만에 걸려서라도 처벌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안전 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으려면 100% 무과실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교통사고에서 100% 무과실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떤 운전자도 민식이법을 피해 나가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개정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한 가지는 과잉 처벌이다. 교통사고는 고의가 아닌 과실, 즉 실수로 일어난다. 실수로 일으킨 교통사고에 어린이가 숨졌다고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 처벌이라고 한다. 개정론자들은 민식이법을 음주운전 사망 사고를 가중 처벌하는 ‘윤창호법’과 비교한다. 윤창호법의 형량이 3년 이상 유기 징역 또는 최고 무기징역으로 민식이법과  같다. 이들은 음주운전은 ‘음주’라는 고의가 들어 있고 음주 후에는 대리 운전으로 음주 운전을 피할 수 있는데도 운전을 했다는 점에서 단순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도 민식이법 형량을 윤창호법 형량과 같게 한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셋째는 스쿨존이 아닌 지역에서 일어난 어린이 교통사고와의 형평성 문제다. 스쿨존이 아닌 지역에서 사고를 내 사람을 숨지게 하거나 다치게 하면 피해자가 어린이든 어른이든 형량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른 것이다. 민식이법의 형량보다 훨씬 약하다. 개정론자들은 똑같은 어린이 사망사고인데도 스쿨존이냐 아니냐에 따라 형량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스쿨존 교통사고', 달리 취급할 특별한 이유 있다

그러면 민식이법 개정론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가 일반 교통사고와 다른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하는지 아닌지다. 스쿨존은 어린이가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욱더 사고 위험 없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그런데 스쿨존은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사고 발생 가능성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클 수 있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교통사고 위험성을 인식하고 사고에 대처하는 능력이 어른보다 크게 떨어진다. 어른이라면 피할 수 있는 사고도 피하지 못하고, 신체가 작아 작은 충격에도 심하게 다칠 수 있다. 

이처럼 스쿨존은 그 밖의 지역과 다른 특수성이 인정되고 존중돼야 한다. 동시에 어린이들은 어른과 다른 특수성이 인정되고 존중돼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교통사고는 일반 교통사고와는 달리 취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교통사고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취급해야 할까. 사고 예방을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전 운전 의무를 더욱 철저히 지키게 하는 것이다. 안전 운전 의무는 스쿨존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도 지켜야 하지만, 스쿨존에서만큼은 운전자들이 더욱 주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식이법이 없던 안전 의무를 새롭게 추가한 것은 아니다. 도로교통법에 이미 다 나와 있는 안전 의무를 지키도록 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횡단 보도 앞에선 일시 정지하고, 보행자 옆을 지날 때는 안전 거리를 두고 서행하고, 보도를 횡단할 때는 일시 정지해 좌,우측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다. 제한 속도와 신호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민식이법에서 말하는 안전 의무 기준이 애매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운전자들의 안전 의식을 강화하려면 교육이나 홍보만 갖고는 안 된다.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법의 기능 중 하나는 습관과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습관과 의식을 바꾸는 가장 유효한 수단의 하나가 처벌 강화다. 그것도 충격적으로 강력한 처벌이다. 민식이법이 형량을 크게 높인 것은 안전 의식 강화를 위한 충격 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스쿨존 사고 무조건 처벌'은 사실과 달라

민식이법 개정론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스쿨존에서 사고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이 인정될 때만 처벌된다. 업무상 과실은 버스나 택시 운전사처럼 운전을 업무로 하는 사람들이 업무 수행 중 저지른 과실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 중과실이란  무거운 과실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운전자들에게 해당한다. 운전할 때는 일반인들이라도 높은 수준의 주의를 해야 한다.  

대법원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 여부의 판단 기준으로 예측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을 든다. 교통 사고 발생을 예측할 수 없었거나, 예측할 수 있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불가항력적으로 사고를 낸 경우에는 주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고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이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의 차이다. 민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과실 비율을 따져  1%의 과실만 인정돼도 그 비율만큼의 손해 배생 책임을 지운다.  '교통사고에서 100% 무과실은 거의 없다'는 민식이법 개정론자들의 주장은 민사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면에 형사에선 과실 비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  민사에서 과실이 인정된다고 형사에서도 반드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형사에선 불가항력적 사고라면 과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스쿨존에서 사고를 냈다고 무조건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안전 의무 위반 정도가 무거우면 높은 형을 받고, 가벼우면 낮은 형을 선고받게 된다. 안전 의무 위반 정도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안전 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 교통사고에서와 똑같더라도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숨지거나 다치게 했을 때는 형량이 훨씬 높아지는 게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신호 위반으로 사고를 낸 경우 일반 교통사고라면 사망 사고든 부상 사고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되지만, 스쿨존 어린이 사고라면 민식이법에 따라 훨씬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정의의 기본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이처럼 스쿨존 어린이 교통 사고의 형량을 일반 교통 사고보다 크게 높였다고 해서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스쿨존에서만큼은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해야 한다는 스쿨존의 특수성을 인정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와 차별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근거에 의한 차별은 정당화될 수 있다.
 
정의의 핵심 기준 중 하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를 일반 사고와 ‘다르게’ 본다면 안전 의무와 처벌 수준도 다르게 하는 게 맞는다. 얼마나 다르게 할지는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안전 보호를 얼마나 중요하게 다룰 것이냐에 달려 있다. 어느 지역에서든, 그리고 어린이든 어른이든, 교통 안전은 다 중요하다. 그러나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안전은 특히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교통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 의무 강도를 높이고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이 잘못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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