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열악한 업무환경에 따른 태아의 건강 손상, 산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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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해 태아에게 선천성 질병이 발생한 경우 산재로 인정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최근 태아의 건강손상으로 인한 선천성 질병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경우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출산 후 10년이 경과된 이후 내려진 것으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 판례이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판결). 대법원이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A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B는 2009년 임신하여 2010년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당시 출산한 아이들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다. 이에 B는 임신초기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하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의 부상, 질병, 장해, 사망 만을 의미하며, 출산한 자녀들은 산업재해보상보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아 요양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B는 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은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므로,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하므로, 출산 전후를 불문하고 치료를 위한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여성근로자들이 임신 중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한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는 자녀를 출산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자녀의 질병일 뿐 근로자 본인의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과 근로자인 B는 별도의 인격체이므로 자녀의 선천성 질병에 관한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태아의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

이에 반하여 대법원은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을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규정된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의미하는데, 태아의 건강손상은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와 요양급여제도의 취지, 헌법에 규정된 여성근로자 보호 및 모성보호의 취지등을 종합해 볼 때,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태아와 여성근로자는 본성상 단일체]

또한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라고 판단하였다. 태아는 근로자인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모체의 일부로 근로현장에 함께 있었기에 어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정도와 관계 없이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출산으로 근로자인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성립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처럼 태아의 건강손상 및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산업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이 각기 달랐던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의 미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적용대상을 ‘근로자’로 명시하고 있어 태아의 건강손상 등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어려웠다. 이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특히 이 사안과 관련하여 마련된 개정안에는, ‘임신중인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 또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노출되어 출산한 경우 출산한 자녀가 사망 또는 선천성 질환이 있는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경우 그 자녀를 근로자로 보아 요양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등 보험급여를 지급함’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태아의 건강손상 등에 관한 업무상 재해 판단기준이 다수 제시되고 있어, 향후에는 이와 관련된 분쟁이 보다 원활하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전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