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당방위 vs 미국 정당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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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22 19:04
수정 : 2020-03-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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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한 여성이 새벽에 911에 전화를 걸어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와있다. 현재 아이와 단 둘이 있다.”며 경찰의 출동을 요청했다. 경찰 출동이 늦어지자 이 여성은 다시 911에 전화를 걸어 “남성이 문을 부수고 침입하면 총으로 쏴도 되냐”고 묻는다. 911 직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여성은 실제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남성을 총으로 쏴 사살했다. 이 여성에겐 정당방위가 인정됐다.

#2

지난 2014년 3월 강원도 원주의 한 주택가에서 새벽에 도둑이 침입했다. 귀가하다 이를 발견한 20대 아들이 도둑과 격투 중 머리를 맞은 도둑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버렸다. 검찰은 과도한 폭행이었다는 이유로 20대 아들을 기소했고, 법원도 이를 인정해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정당방위로 결론이 날 사건이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우선 형법이 정한 정당방위의 성립 요건이 모호해서다.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라고 정의한 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상당한 이유’를 정당방위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상당성의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법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정당방위의 허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정당방위 인정 여부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문 여성의 행동을 오히려 과잉방어로 평가해 실형을 선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일선 수사기관이나 하급심 법원에서도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보단 형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의 정당방위의 개념과 범위는 미국 수정 헌법 제2조에서부터 시작된다. 해당 법은 개인이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정당방위법의 정식 명칭은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Stand Your Ground Law)’다. 정당방위의 정확한 영어 표현은 ‘Self Defense’다. ‘Stand Your Ground’는 ‘당신의 땅을 지켜라’ 정도로 풀이될 수 있는데 ‘Self Defense’라는 용어 대신 ‘Stand Your Ground’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은 집 주인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그곳으로부터 도망칠 필요 없이 즉시 총기로 대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No duty to retreat regardless of where attack takes place). 이 법은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메사추세츠 등 미국 26개주에서 채택하고 있다.

일리노이, 노스캐롤라이나 등 미국 16개 주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 대신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 법은 집 주인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집안에 들어온 침입자를 총으로 쏴 죽여도 기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No duty to retreat if in the home)’. 이 법은 정당방위의 장소를 집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과 차이가 난다.

조지타운대 로스쿨 피터 버니 교수는 미국의 정당방위 제도에 대해 “과거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보았다.”며 “여기에다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관념이 형성된 결과 현재와 같은 정당방위 개념과 범위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미국 법조계는 정당방위를 적용하는데 있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2년 남편의 지속적인 구타와 성폭력에 시달려온 한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담당 검사가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권력의 불충분한 개입과 사회적 무관심이 낳은 결과”라며 그녀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면서 무죄 구형을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2006년 남편을 총으로 쏴 죽게 한 가정폭력 피해자가 2010년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선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한 번도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가 없다. 범죄가 점점 흉포화 되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재 국내 현실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의 범위를 더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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