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명의대여 책임과 책임 피하기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9가단609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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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업을 하는 경우 신용불량 등 여타 이유로 인하여 타인의 명의를 빌려서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경우 거래 상대방이 거래에 따라 발생한 미수금을 실제 사업주가 아닌 명의 대여자에게 청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명의 대여자로서는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채무를 변제할 책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 사업을 수행한 적이 없는 단순 명의대여자이므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 상법과 대법원 판례는 다음과 같다.

타인에게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영업을 할 것을 허락한 자는 자기를 영업주로 오인하여 거래한 제3자에 대하여 그 타인과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고(상법 제24조), 상법 제24조의 규정에 의한 명의대여자의 책임은 명의자를 영업주로 오인하여 거래한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거래 상대방이 명의대여사실을 알았거나 모른 데 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바, 이때 거래의 상대방이 위와 같이 명의대여사실을 알았거나 모른 데 대한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면책을 주장하는 명의대여자들이 입증책임을 부담한다(대법원 2001. 4. 13. 선고 2000다10512 판결 등 참조).

즉, 원칙적으로 명의를 빌려준 자는 일응 연대책임 등 강력한 책임을 부여받는 것이지만, 예외적으로 거래상대방이 그와 같은 ‘명의대여사실(즉 명의대여자가 실제 거래상대방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러한 점을 모른데 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면, 명의대여자는 명의대여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송에서 그와 같은 점을 입증(증명)할 책임은 명의대여자에게 있다.

아래는 필자가 명의대여에 따른 책임을 근거로 건축자재 대금 청구를 받게 된 피고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한 사건이다. 명의대여 면책 법리에 관한 주장, 입증을 효과적으로 하여 승소판결을 받았다. 명의대여 책임에 대한 리딩케이스 격의 사례이므로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 관계

가. 원고는 00시에서 00건재라는 상호로 건축자재, 골재 등을 판매하는 영업을 하고 있고, 김정철(가명)은 피고의 명의를 대여하여 00건설이라는 상호로 건설업을 하고 있다.

나. 원고는 2019. 10. 31.부터 2019. 1. 29.까지 사이에 김정철에게 자재 등을 공급하였다.

다. 원고는 김정철에게 미수금이 38,957,721원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급 독촉을 하였지만 김정철은 ‘이미 지급이 완료되었고, 오히려 과다지급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았다.

라. 이에 원고는 00건설의 사업자 명의자인 피고를 상대로 38,957,721원 물품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는 소송 중간에 청구금액을 22,419,469원으로 변경하였다.

마. 피고는 필자를 찾아와 ‘자신은 실제 사업을 한 적이 없으므로 억울하다’며 상담을 하였고, 이에 필자는 피고를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하였다.

바. 원고의 주장

원고는 2018. 10. 30.부터 2019. 1. 29.까지 피고 명의로 사업자등록이 된 ‘00건설’에 22,419,469원 상당의 건축자재를 납품하였다. 피고는 00건설의 사업자등록을 하고 김정철로 하여금 이를 사용하도록 허락하였으므로, 상법 제24조에 따라 명의대여자로서 원고에게 위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사. 피고의 주장

00건설은 김정철이 실제로 운영하는 업체로서, 원고는 피고와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 또한 원고는 김정철이 00건설을 운영하는 사업주임을 알고 있었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였으므로, 피고는 명의대여자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3. 판결 요지

가. 판단

1) 우선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와 물품공급계약을 직접 체결한 당사자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원고 측이 피고 본인과 계약의 교섭이나 이행을 위해 직접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없다.

2) 다음으로 원고가 주장하는 상법상 명의대여자 책임이 피고에게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본다.

상법 제24조의 규정에 의한 명의대여자의 책임은 명의자를 영업주로 오인하여 거래한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거래 상대방이 명의대여사실을 알았거나 모른 데 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바, 이때 거래의 상대방이 위와 같이 명의대여사실을 알았거나 모른 데 대한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면책을 주장하는 명의대여자들이 입증책임을 부담한다(대법원 2001. 4. 13. 선고 2000다10512 판결 참조).

갑 제1 내지 14, 18호증, 을 제4, 5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는 피고가 00건설의 사업주가 아님을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고, 설사 알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중과실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에게는 명의대여자 책임이 성립하지 아니한다.

① 원고는 2018. 7.경부터 김정철과 거래해왔는데, 당시 사업자등록 명의는 김규성(가명)으로 되어 있었다. 김규성 명의로 사업자등록이 되었을 때와 피고 명의로 사업자등록이 되었을 때 사이에, 원고가 김정철과 거래나 교섭을 한 방법이나 태양 등에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② 김규성은 남자이고, 원고 측과 거래를 주도한 김정철 역시 남자이다. 만약 00건설의 실제 영업주가 여성인 피고로 변경되었다면 원고가 이를 인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김정철에게 간단히 물어보는 것만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원고가 00건설의 영업주가 변경된 것인지, 변경되었다면 새로 영업주가 된 피고에게 거래할 만한 신용이나 자력이 있는지 등을 확인한 흔적이 전혀 없다. 이는 원고 역시 김정철이 빌려 쓰는 사업자등록의 명의만 변경되었을 뿐, 여전히 김정철이 거래상대방인 실제 영업주라고 생각하였다고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③ 원고가 이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청구하는 거래내역 중 2018. 11.분의 거래는 2018. 12. 11.에 세금계산서가 발급되었고, 그 명의는 김규성으로 되어 있다. 2018. 12.분 중 공평동 현장의 경우 계약은 2018. 7.경 체결되었고, 계약서에는 김규성이 대표로 기재된 직인이 날인되어 있다. 이러한 거래내역들은 명의대여자 책임의 전제가 되는 피고의 명의대여사실부터 인정하기 어렵다.

나.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한다.

4. 판결의 의의

사업자 명의를 빌려주면 그에 따라 연대책임 등의 법률상 책임을 져야 하고, 예외적으로 일정한 사정과 요건을 증명한 경우에만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 사건에서는 피고가 판결문에 기재된 내용 외에도, ① 실제로 원고는 이 사건 거래 시작 당시나 이 사건 거래기간 동안 피고를 사업상 만난 적이 없고 연락을 한 적도 없는 점, ② 원고는 김정철을 ‘사장님’이라고 호칭하면서 이 사건 물품거래와 관련하여 김정철과 연락을 주고 받았던 점, ③ 원고는 계좌 명의나 사업자 명의가 김정철이 아닌 피고로 되어 있는 것과 관련하여, 김정철과 피고가 부부관계라고 생각하여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던 점, ④ 종전까지 김규성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였고 김규성 계좌로 대금 이체를 하였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피고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피고 계좌로 이체를 하는 등의 변경사항을 알았으면서도 원고가 아무런 이의도 하지 않고 피고에 대한 문의를 하지 않은 점, ⑤ 원고는 김정철이 ‘신용불량’이어서 김정철 명의로는 사업자를 못 내는 것을 알고 있었던 점. ⑥ 피고는 영업에 일절 관련을 하지 않았으며, 피고와 김정철은 고용관계나 동업관계도 아니고, 피고는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 여러 사정을 효율적으로 주장, 입증하였다.

결국 “원고는 김정철이 피고로부터 사업자등록 명의를 차용하여 이 사건 물품을 공급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고, 설령 이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사업자등록 명의가 피고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 김정철에게 확인을 하는 등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다면 위 명의대여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명의대여사실을 모른 데 중과실이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득할 수 있었다.

위 판결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에게 그 책임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설시한 것으로, 합리적이고 납득이 가는 판결이다.

5. 나가며

그렇다면, 위 사건에서 원고는 김정철에게 건축자재 대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나, 김정철의 임의변제를 기대하기 어렵고, 김정철 명의로 된 재산이 없어 강제집행 등을 통한 돈 회수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거래를 하려는 자는 거래를 하기 전에 거래상대 명의자와 실제 사업주가 동일인물인지, 실제 사업주가 누구인지, 그 자에게 돈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한편 위 사건에서는 다행히 명의대여 책임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사실상 명의대여 책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반대로 명의를 빌려주는 자의 입장에서는, 사업자나 은행 계좌 등 자신의 명의를 타인에게 빌려줄 때는 명의대여에 따르는 법률상 책임이 실로 막강하다는 점을 인식하고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사진=남광진 변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