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4월 총선, 공수처 운명 가른다

  •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 야당이 결정적 역할
  • 통합당 승리하면 문도 열지 못 할 가능성도
  • 민주당 압승 땐 "펄펄"…윤석열 수사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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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04 14:25
수정 : 2020-03-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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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이 말했다.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 (연동형 30석) 비율을 더 낮췄어야 했다.” 그러자 다른 의원이 대꾸했다. “그때는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 더불어민주당 핵심 의원 5명이 지난 2월 26일 모인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라고 한다. 중앙일보가 2월 28일 보도했다. 30석인 연동형 비례대표 선출 의석 수를 더 줄였어야 했는데 범여권 군소 야당의 힘을 빌려 공수처법을 통과시켜야 하자니  줄일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선거법을 개정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건 핑계이고 사실은 범여권 군소 야당들을 끌어들여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미끼’로 사용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범여권 군소 야당이 원하는 것이었다. 공수처 도입을 선거법 개정과 맞바꾸기했다는 것은 이들의 실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긴 하다.

처장 후보 추천권 야당 몫 2명 행방이 관건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선거법 개정이라는 무리수까지 써 가며 도입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 선거법에 따라 이번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이 치러진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총선 결과에 따라 공수처 운명이 갈라지게 생겼다. 공수처가 문도 열지 못하고 표류할 수도 있고, 문은 열어도 야당에 질질 끌려다닐 수도 있고, 아예 폐지될 수도 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국회 의석 수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되거나 더 나아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다. 반대로 공수처가 날개를 달고 펄펄 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해 과반수를 얻는 경우다. 총선 결과는 국정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공수처 운명도 가르게 되는 것이다.

왜 총선 결과가 공수처 운명을 좌우할까.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에 야당이 참여하게 돼 있는 공수처 제도 때문이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7명 위원으로 구성된다.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여당 추천 위원 2명, 야당 추천 위원 2명이다. 7명 중 6명의 동의로 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임명한다. 추천위원회 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를 받아야 처장 후보로 추천될 수 있기 때문에 야당 추천 위원(이하 ‘야당 몫’으로 지칭) 2명이 어떤 사람이냐가 결정적 변수가 된다.

가장 큰 관심사는 미래통합당이 야당 몫 2명을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이냐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라야 한다(공수처법 제6조 ④항) . 국회의원 20명 이상이 돼야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미래통합당이 20명 이상 될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군소 야당 중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야당이 나올지는 불확실하다. 그런 야당이 나온다면 그 정당도 야당 몫 2명 중 1명을 갖게 된다. 현재 군소 야당들은 범여권 성향이다. 야당 몫 2명을 미래통합당이 독차지하느냐 범여권 군소 야당과 1명씩 나눠 갖느냐가 관건이다. 야당 몫 2명이 어떻게 배분될지는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냐에 달려 있다.

통합당이 독차지하면 공수처 좌지우지 가능

만약 미래통합당이 큰 지지를 받아서 전체 의석을 더불어민주당과 거의 절반씩 나눠 갖게 된다면 나머지 의석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군소 야당이 나오기 어렵다. 그 경우 미래통합당이 야당 몫 2명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래통합당이 공수처를 사실상 좌우하게 된다. 우선 미래통합당이 반대하는 사람은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될 수 없다. 미래통합당이 공수처장 임명 거부권을 갖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미래통합당 동의를 받으려면 정치적 중립성이 확실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공수처가 출범은 하겠지만 정부 여당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에 앉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아가 미래통합당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을 거부할 수도 있다. 미래통합당 몫 2명 추천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추천위원회는 구성되지 못하고 이에 따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불가능해진다. 공수처장 후보가 없으니 처장을 임명할 수도 없다. 처장이 임명되지 않으면 공수처 검사도, 수사관도 임명할 수 없다. 공수처 검사는 공수처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수사관은 공수처장이 임명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수처는 출범도 못하고 표류하게 된다. ‘개점 휴업’이 아니라 아예 개점을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때 설립된 특별감찰관도 국회가 특별감찰관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아 공석이 된 지 오래다.

미래통합당이 야당 몫 2명의 추천을 거부할 수 있을지는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미래통합당이 더불어민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되면 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더불어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빼앗기더라도 의석 수 차이가 엇비슷하면 미래통합당은 ‘사실상의 선거 승리’라며 야당 몫 2명의 추천을 거부할 수 있다.

통합당 1명·범여권 야당 1명일 땐 공수처 앞날 불투명

만약 미래통합당이 선거에서 패배해 의석을 많이 얻지 못하고 그 결과 범여권 군소 야당 중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야당이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래통합당은 야당 몫 2명 중 1명만 확보하게 된다. 그 경우라도 미래통합당이 추천위원회 구성에 참여하지 않겠다면서 자기 당 몫 1명의 추천을 거부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통합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뒤라 거부를 밀고나갈 힘이 부족할 것이다. 여론의 역풍을 뚫고 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래통합당 내부에서 자기 당 몫 1명의 추천 여부를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통합당이 끝내 추천을 거부하기로 한다면  공수처는  출범하지 못한다.공수처의 앞날이 통합당의 결정에 달려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통합당이 추천하기로 한다면 공수처는 굴러는 갈 것이다. 그러나 통합당이 공수처장 임명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다른 추천위원 6명이 찬성하면 미래통합당이 반대하는 사람도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간 협상으로 민주당 성향 후보 1명, 통합당 성향 후보 1명이 동시에 추천될 수도 있다.  그 경우에도 대통령은 당연히 민주당 성향 후보를 지명할 것이기에 통합당 성향 후보는 별 의미가 없다.

미래통합당이 선거에서 압승해 과반수를 얻는다면 어찌 될까? 공수처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공수처 폐지는 미래통합당의 주요 선거 공약이다. 미래통합당은 공수처 폐지 법안을 내게 될 것이다. 선거 압승이라는 여세를 타고 공수처 폐지를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과반수 당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 압승하면 공수처 예정대로 7월 출범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을 넘어 과반수 당이 된다면 공수처는 예정대로 7월 출범해 업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1월 14일 공포됐다. ‘법 공포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설립돼야 한다’는 공수처법 규정에 따라 7월 15일까지는 설립해야 한다. 정부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공수처 설립 준비단을 꾸리고 발족 준비를 하고 있다. 설립준비단에는 법무부‧인사혁신처‧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경찰청‧국방부‧법제처 등 각 부처 공무원 20명이 파견 나와 일하고 있다.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지난 1월 23일 검찰이 자신을 기소한 데 대해 “검찰권을 남용한 기소 쿠데타”라며 “검찰총장에 의한 검사장 결재권 박탈이 이뤄진 것은 단순한 절차 위반을 넘어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난했다. 최 비서관은 “향후 공수처 수사를 통해 범죄 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석열 총장을 수사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공수처가 윤 총장을 수사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 비서관의 주장은 현 정권 사람들이 공수처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미래통합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비례대표용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후보만 출마시키고,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만 출마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 18~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래통합당 지지자의 88%가 4·15 총선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미래한국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미래통합당 지지자들 대다수가 미래한국당이 미래통합당의 자매 정당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 조사대로라면 미래한국당이 연동형 비례 대표 의석 30석 중 최대 20석 가까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총선 뒤 두 당은 미래통합당으로 합쳐진다. 미래통합당 전체 의석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여야, 비례대표용 정당 '꼼수'로 세 결집 나서

이에 위협을 느껴서인지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비례대표용 정당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은 공식적으로는 창당을 부인하고 있지만, 일부 의원과 친여단체 중심으로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정의당은 민주당 일부의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 움직임을 비난한다. 민주당까지 그런 정당을 만들면 연동형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민주당과 통합당이 거의 싹쓸이 하게 돼 정의당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 

법이나 제도는 정치세력 간 타협의 산물이다. 정치적 타협의 조건은 힘과 여론 지지다. 기본적으론 힘이 센 쪽 주장대로 결론이 나게 마련이다. 의회민주국가에서 힘의 바탕은 수(數), 특히 국회 의석 수다.  국회 의석 과반수를 확보하는 쪽이 이긴다. 더불어민주당은 범여권 야당들과 ’4+1’ 협의체를 만들어 과반수를 확보한 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반대를 물리치고 공수처법 제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범여권 야당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지역구 당선자는 못 내더라도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서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계산해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격렬한 집단 몸싸움까지 벌였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공수처법은 야당의 반대 속에 범여권 세력끼리의 타협과  힘의 우위를 통해 제정됐다.

그러나 정치적 타협이 힘에만 의존하면 타협의 결과가 지속되기 어렵다. 타협 절차와 내용의 정당성에 대해 일정한 정도 여론 지지를 받아야 지속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여론 지지를 받으려면 자기 세력뿐만 아니라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반대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타협은 진정한 타협이 되기 어렵다. 반대 세력은 기회만 있으면 그 타협을 없던 일로 하거나 최소한 자기들 뜻이 반영된 형태로 수정하려 한다. 미래통합당이 공수처 폐지를 총선 공약으로까지 내건 게 바로 그것이다. 통합당은 총선에서 완패하지 않는 한 공수처 폐지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힘에만 의존한 불완전한 타협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준비단장에게 위촉장을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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