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법치 행정, 적극 행정, 그리고 전문가

“변호사님! 혹시 제가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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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법제처에 근무하던 때,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甲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상황은 이랬다. 해당 지자체는 특정 허가처분에 있어, 근거 법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재량에 의한 허가처분을 피하고, 단순히 정해진 요건을 갖춘 경우 발급되도록 규정된 기속행위에 해당하는 허가처분 만을 발급하고 있었다. 그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정당한 재량의 범위 안에서 허가처분을 발급하는 것은 권장하여야 할 혁신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甲은 징계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행정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행해지며, 행정에 의해 불이익을 받은 사람의 구제제도가 정비되어 있어야 함을 요청하는 것을 소극적 의미의 합법성, 즉 법치행정이라고 한다. 이는 시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행정은 그 법률의 하위수준에 두고자 하는 의도로서 근대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법치행정은 자의적인 공무 집행 및 각종 부패와 비리를 막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우리 공무원들의 판단 능력을 무시하고, 법령의 신축적인 적용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행정의 경직성과 보수성을 초래하여 오히려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단순한 법치행정이 아니라, 법률의 기본 정신을 살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적극적 의미의 합법성 개념이 대두하였으며, 그것의 한국적 적용이 바로 이번 정부의 화두인 ‘적극 행정’이다.

앞서 언급했던 지방자치단체는 그간 ‘법치행정’의 관행에 젖어 자칫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재량의 행사를 자제하고 지나친 형식주의에 얽매인 결과, 적법한 요건을 갖춘 허가 신청인에게 피해를 미치는 극도의 행정 비효율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행정의 ‘적극적인’ 적용을 통해 신청인의 편익과 지역 사회의 공익을 조화시키려는 순간, 공무원 甲은 징계를 두려워해야만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행정기관 내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위와 같은 불합리는 법률 전문가의 자문과 개입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만약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었다면, 허가 신청이 적법한 허가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관하여 공·사익을 비교형량하여 올바른 판단을 도모하였을 것이며, 신청인의 불복에 대응할 방어 전략을 수립했을 것이다. 향후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에 따라 허가 담당 공무원이 필요한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입증하여 징계를 피할 수 있는 방법까지 자문해줬을 것임이 틀림없다. 법치행정과 적극행정의 이념을 조화롭게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법률전문가의 충원인 것이다.

그런데 탈규제화 정책, 적극 행정의 도입으로 행정기관의 법률 전문가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변호사의 광범위한 업무 영역과 그에 따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각 행정기관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 처우를 내세우며 필요한 변호사의 임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모 지방 교육청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운영지원, 심의자료 법률 검토 및 결정문 작성, 심의 관련 사안조사 지원 및 미원처리에 대한 법률 지원, 심의위원회 결정 관련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업무, 교육청에 대한 법률 지원 및 상담, 학교폭력 및 교권보호와 관련된 연수 및 매뉴얼 작성 등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하는 변호사의 채용을 공고하였다. 담당 업무에 필요한 전문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고려하면 최소한 팀장급 대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오히려 7급 공무원으로 하향하여 선발하겠다는 태도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법률전문가로서의 합당한 대우와 권위는 부정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맡기고 전문성을 온전히 발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채용될 변호사를 공무를 함께 할 ‘동료’로서 인정하는 것이 아닌, 한시적 필요와 편의에 따라서 일만 떠맡기는 ‘도구적 전문가’로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공무원 甲은 용기를 내 중앙정부에서 일하는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지만, 개별적 법률자문이 불가능한 위치에 있던 필자는 개인적 입장에서 대략적인 조언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공무원 甲에게 개별적으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동료’로서의 변호사가 존재했다면 甲이 몸담고 있던 지자체의 불합리한 관행은 오래 전에 타파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민원인의 피해 또한 방지할 수 있었음이 명백하다. 변호사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처우로 인해 비롯된 법률전문가의 공백은 결국 해당 행정기관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이는 ‘적극 행정’과 대치되는 극단적인 행정 비효율로 이어지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소년의 주먹 하나가 제방 붕괴를 막았다는 네덜란드의 설화처럼, 법률전문가에 대한 인식 제고 및 합당한 처우 등이 추후 발생할 막대한 손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소한 조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김상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