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사기죄에 있어서 편취범의에 관하여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9고정68 판결

  • 프린트
  • 글씨작게
  • 글씨크게
1. 들어가며

지난번에 사기죄에 있어서의 수사 실무 관행과 편취범의에 대한 판단기준에 대해 기고를 한 적이 있었다. 실무 관행상, 차주가 상당한 금원을 변제하였다거나 또는 갑작스런 경제적 악화 등 사정변화로 돈을 변제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지 않다면, 돈을 빌릴 당시 미필적으로나마 편취의 의사가 있다고 보고 사기죄로 기소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관행과 대조되는 사례로, 대주가 차주의 신용 상태를 알고 있어 장래에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주가 돈을 갚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 성립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차주가 상당한 금원을 변제하는 등의 사정이 있었으므로 편취범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무죄가 선고된 리딩케이스 격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 관계

가. 피고인은 지인인 A의 소개로 피해자를 소개받았다. 2015. 12. 5.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번호계에 가입시켜주고 계금 1,000만원을 주면 계 불입금 월 70만원을 꼬박꼬박 납입하겠다”고 하였다. 피해자는 지인 A 및 피고인의 아들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피고인을 월 70만원씩 19회 불입하는 번호계에 가입하게 하고 피고인에게 계금 1,000만원을 지급하였다.

나. 이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2016. 1. 10.부터 2016. 7. 1.까지 6개월분의 계 불입금 합계 420만원을 계좌이체로 송금하였다.

다. 2016. 5. 4.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식당 운영비가 부족하니 돈을 빌려주면 2-3일 안에 갚아 주겠다”고 하였고,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80만원을 빌려주었다.

라. 2016. 5. 4. 피고인은 이 차용금 80만원을 변제하였고 곧바로 다시 80만원을 빌리게 되었다. 이후 2016. 7.경 이 차용금 80만원을 갚으려고 하였는데, 피해자가 계금을 먼저 변제하라는 요구를 하였고 이에 계불임금 명목으로 7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였다(이 현금지급분에 대하여는 피해자는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음).

마. 피고인은 이후 차용금 80만원 및 나머지 13개월 분의 계불입금 910만원은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았다.

바. 그런데, 2016. 7. 21.경 피해자는 피고인 소유 건물을 금 9,000만원에 매입하였고, 이중 5,000만원을 현실로 피고인에게 지급하였고, 3,500만원은 기존 세입자 보증금 반환 채무를 인수하는 것으로 갈음하였다. 매매대금 9,000만원 중 지급되지 아니한 매매잔금 500만원은 피고인이 미지급한 계불입금 채권과 상계처리하기로 하였다(이 500만원 상계처리분에 대하여는 피해자는 상계처리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음).

사. 당시 피고인은 B하우스(주방기구 용품점)와 식당을 운영하였는데, B하우스 운영자금 명목으로 제3자로부터 차용한 4,700만원 상당의 채무 및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권채무를 상당금액 부담하고 있었다.

아. 그 이후 B하우스 가계수표의 부도처리, 그로인한 신용불량 발생 등 경제사정악화로 2016. 5. 리방하우스를 그만두었고, 2016. 8.경 식당 운영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제3자로부터 빌린 차용금 관련하여 2016. 5.경 사기고소를 당하여 2017. 7. 18. 법정구속되었다.

자. 2018. 2. 12. 피해자는 피고인을 사기죄로 고소하였고, 2019. 5. 31. 기소되었다.

차. 피고인은 필자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사건 검토를 해보니 피고인에게 편취범의나 기망이 없었다고 판단되어 다음과 같이 무죄를 주장하였다.

“비록 피고인에게 다른 채무가 존재하였더라도, 적어도 본건 계금 및 차용금에 대하여는 상당금액 변제가 이행되었고 또 이행하려 했다는 점 및 본건 피고인이 변제해야 할 금액은 ‘월 70만원’, ‘80만원’이어서 비교적 소액인 점에 비추어, 처음부터 편취의 의사나 기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차용 이후 B하우스 수표의 부도처리, 그로인한 신용불량 발생 등 경제사정악화, 건강악화, 신변 등의 사정으로 부득이 피해자에게 변제를 다 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피고인이 돈을 받을 당시에는 이를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비록 그 후에 사정 변화로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아니하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속여 돈을 지급받아 편취하였다는 이 사건 범죄사실을 모두 합리적 의심 없이 유죄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하였을까?

3. 판결 요지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해 인정할 수 있는 다음의 사정, 즉 ①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점, ② 피고인은 계금 수령 후 2016. 1. 10.부터 2016. 7.까지 7회에 걸쳐 계금 490만원을 지급한 점, ③ 고소인은 2016. 7. 21. 피고인에게 건물 매매대금 9,000만원 중 5,000만원을 지급하고, 피고인은 고소인에게 매매대금 잔금 500만원과 계금 미납금을 상계한다고 고지한 점, ④ 피고인은 2015. 12. 5. 계금 수령 당시 B하우스를 정상 운영하였고 2016. 5. 4. 차용 당시 식당을 정상운영하였는데, 사정이 어려워져 2016. 5.경 리빙하우스를 문 닫고, 2016. 8.경 식당을 문 닫게 된 점, ⑤ 피고인은 2016. 5.경 사기죄로 고소당하여 2017. 7. 18. 법정 구속된 점, ⑥ 피고인은 2016. 5. 1. 식당운영비로 빌린 80만원을 2016. 5. 4. 변제하고 다시 80만원을 빌린 점, ⑦ 2016. 7.경 2016. 5. 4.자 차용금 80만원을 변제하고자 하였는데 계금을 먼저 변제하라는 요구를 받고 계금 명목으로 7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후발적 사유로 계금과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당시 피고인의 편취 범의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이 판결 요지를 공시한다.

4. 판결의 의의

사기의 고의는 주관적인 사정이므로 제3자가 밖에서 주관적 내면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법원은 ‘차용사기에 있어서의 편취의 범의에 관한 판단 기준’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기준을 설시하여 왔다.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소비대차 거래에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아니한다. 돈을 빌릴 당시 변제할 의사와 능력(즉 편취의 범의)이 있었는지 여부는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즉, 돈을 빌린 후 비록 나중에 돈을 갚지 못하였더라도,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이는 형사상 사기로 볼 수 없고,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사정들을 종합하여 내심의 주관적 의사(편취의 범의)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건에서도 “피고인이 계금 1,000만원을 받은 후 피해자에게 변제한 금액이 도합 990만원에 달하여 원금 1,000만원에 대하여 거의 완납한 점, 피고인은 당시 적어도 9,000만원 상당의 실제 처분가능한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던 점, 당시 피고인에게 리빙하우스 및 옥이네식당 영업으로 일정 수익이 있었고 리빙하우스 내에 주방용품, 주방기구 등 실제 처분가능한 재산가치 있는 유체동산들이 존재하였던 점, 계금에 대한 연대보증인으로 별도 2명을 두어 피고인 외에 2명의 인적담보도 있었던 점,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상담을 해주는 등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후발적 사유로 돈을 변제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와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의 기망이나 편취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단순하게, 피고인이 계금 1,000만원을 받은 후 7개월 동안 매월 정해진 계금을 꼬박 지급한 점과 이후 건물 매매잔금 500만원과 계금을 상계하기로 한 객관적 사정을 놓고 볼 때, 피고인이 처음부터 돈을 편취할 생각으로 피해자를 기망하였다는 주관적 의사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기를 칠 생각이었으면, 원금 1,000만원 대비 99%에 해당하는 금액인 990만원을 갚았겠냐는 것이다.

같은 취지로, 검찰에서 이 사건을 기소할 때 상당한 고심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당시 피고인에게 상당한 금액의 다른 채무가 존재하였다는 점이 기소의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본 판결은 법리적으로나,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나 어느 모로 보든 매우 타당한 판결로 보여진다.

5. 나가며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도 든다. 돈을 갚지 않을 생각으로 돈을 빌려놓고, 이자 명목의 일부의 돈만 변제하면 사기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나, 돈을 일부 변제했다는 사정은 사기죄 판단의 한 기준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돈을 일부 변제했더라도 피고인의 재력이나 채무관계, 기망의 내용 등 다른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했을 때 사기죄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으며, 실제 그러한 사례가 있다. 다음 기회에 소개해보도록 한다. 또한 우리 경찰, 검찰과 법원에서는 사기에 대해 현명하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판단하고 있으므로, 우리 사법기관을 믿도록 하자.
 

[사진=남광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