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모르는 일반인, 인공지능 도움으로 변호사에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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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30 11:11
수정 : 2019-09-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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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 경진대회 참가자들이 문제지를 보며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김낭기 논설고문]


근로계약서 3건 읽고 자문 의견 내는 대회
인공지능팀, 큰 점수 차이로 1~3등 휩쓸어


인공지능과 인간 변호사가 법률 문제를 놓고 대결했다. 누가 이겼을까? 인공지능의 압승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공지능 도움을 받은 비(非)변호사, 즉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인간 변호사들을 압도적으로 이기고 3등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 일반인은 물리학 전공자로서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일반인들도 법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변호사 없이도 일상적인 법률 행위를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인공지능과 변호사의 대결은 8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5시간 동안 열렸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가 주최한 제1회 알파로 경진대회(Alpha Law Competition)다. 여기에 12개 팀이 출전했다. 3개는 인공지능팀, 9개는 인간 변호사팀이다. 인공지능팀 중 두 팀은 각각 인공지능과 변호사 1명, 나머지 한 팀은 인공지능과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 1명이 한 팀을 이뤘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일반인' 팀이 바로 3등을 차지한 주인공이다.변호사팀은 변호사 2명이 2인1조로 한 팀을 이뤘다. 인공지능팀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담은 USB 1개씩이 제공됐다.

대결은 주최 측이 준비한 근로계약서 예시문을 보고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2 라운드에 걸쳐 진행됐다. 1라운드에는 내용이 평이한 근로계약서 2건, 2라운드에는 좀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근로계약서 1건이 제시됐다. 근로계약서 내용과 형식은 실제 근로계약서와 같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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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

“갑”(회사 측)과 “을”(근로자)은 다음과 같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상호 성실하게 계약 사항을 준수한다.

제1조 계약기간:2019년6월1일~2028년 5월31일
제2조 업무내용:총무,경영 지원팀
제3조 근무장소:회사 본점 및 “갑”이 지시하는 장소
제4조 근무일:월요일~금요일
제5조 휴가 및 휴일
①주휴일:매주 일요일
②’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근로자의 날(5월1일)은 유급휴일로 한다.
③ 1개월 만근 시 1일의 유급휴가 및 1년 개근 시 15일의 유급휴가 지급

이런 식으로 제6조 근무시간, 제7조 임금, 제8조 사회보험 적용 여부, 제9조 계약서 교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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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단답형,서술형으로 답안 작성

풀어야 할 문제는 1, 2라운드 똑같이 세 항목씩이다. 첫째는 객관식이다. 근로계약서의 계약 조항을 검토한 후 각 조항별로 위험' , '적정', '모름' 중 하나를 고르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단답형이다. 계약서에 보완돼야 할 내용이나 누락된 내용이 있으면 5개 이내의 단답형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기밀 유지 조항 필요’ ‘계약 해지 조항 필요’ 같은 식이다. 셋째는 서술형이다. 의뢰인에게 제시할 종합적인 자문 의견을 서술하는 것이다. ’근로자의 나이를 고려할 때 ~와 같은 점을 주의하고, 근무 형태를 감안할 때 ~와 같은 점을 유의하고, 기업 규모의 특성상 ~와 같은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라는 식이다.

문제 풀이가 시작됐다. 주어진 시간은 1라운드 30분, 2라운드는 20분. 팀마다 계약서 내용을 읽고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인간변호사팀은 변호사들이 직접 계약서를 읽고 분석했다. 인공지능팀은 팀원인 변호사가 계약서를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넣어 돌렸다. 참가 팀들은 계약서를 읽고 분석한 뒤  답안지 작성에 들어갔다.

답안지 작성이 끝나자 변호사 경력이 풍부한 3명의 심사위원이 채점을 맡았다. 심사는 당사자의 이름이나 소속,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답안의 수준만으로 평가하는  완전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다.  12개 팀은 대회 시작 직전 각자 번호를 추첨했다. 답안지에는 이 번호만을 기재해야 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각 팀의 변호사 이름은 물론이고, 그 팀이 인공지능팀인지 인간 변호사팀인지도 알 수 없게 돼 있었다. 만점은 150점.

마침내 1시간에 걸친 심사가 끝났다.  심사위원장인 이명숙 변호사가  1~5등을 발표하려고 마이크 앞에 섰다. 대회 현장에 있던 변호사와 취재 기자 등 100여명이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1등 120점, 2등 118점, 3등 107점, 4등 61점, 5등 52점.” 그런데 1,2,3등을 인공지능팀 3개팀이 휩쓸었다. 4,5등은 인간 변호사팀이었다. 인공지능팀과 인간 변호사 팀의 점수 차는 너무나 컸다.  

계약서 분석에 인간 변호사는 20~30분, 인공지능은 단 7초

인공지능팀이 압승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계약서 내용을 읽고 분석하는 데 인공지능이 압도적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인간 변호사팀은 자신들이 계약서를 직접 읽고 분석하는 데만 20~30분이 걸렸다. 그러나 인공지능팀은 계약서 내용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넣어 돌리자 단 7초 정도만에 분석 결과가 좍 나왔다. 인공지능은 계약서 각 조항별로 문제점이나 위험 요인 , 보완이 필요하거나 누락된 내용, 종합 의견 등을 분석해서 문서로 제시했다. 분석과  판단의 근거가 된 해당 법률 조항은 물론, 판례와 노동부 유권해석까지 제시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분석한 내용의 중요도를 상, 중, 하로 나눠 상은 분홍색, 중은 노란색, 하는 초록색으로 문서의 바탕을 구별해 팀원인 인간 변호사가 알아보기 쉽게 했다.

 

인공지능이 문제지인 근로계약서를 분석한 뒤 그 결과를 제시한 내용. 분홍색 바탕은 중요도 '상', 노란색 바탕은 중요도 '중'을 의미한다. 본문의 파란색 문장은 분석 근거가 된 해당 법률 조항이다. [김낭기 논설고문]



인공지능이 분석한 결과의 예를 보면 이렇다. ‘근로계약기간이 2년 10일로 돼 있는데 기간제 계약 기간은 2년 이내로 해야 한다. 2년이 넘으면 정규직이 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니 기간제인지 정규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서 법 규정에 맞게 해야 한다. ' 또 다른 예는 최저임금제에 관한 것이다. ‘연봉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합치면 월급은 얼마이고 시급은 얼마인데 이는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인공지능팀 변호사들은 인공지능이 분석한 결과를 검토해서 자기 의견과 같으면 그대로 답안지를 작성하고, 자기 의견과 다르면 자기 의견을 감안해 답안지를 작성했다고 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공지능이 계약서를 7초만에 분석해 준 덕분에 문제 풀이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2등을 한 김한규 변호사는 “인공지능의 분석이 시간도 빠를 뿐만 아니라 내용도 상당히 정확한 편이었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돼 변호사들의 노동 시간도 단축될 것같다”고 말했다.

인간 변호사 팀 중에는 서술형 답안을 한 자도 쓰지 못하고 공백으로 남긴 팀도 있었다. 이 팀의 한 변호사는 “분석하는 데 시간이 너무 결려 답안을 작성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실제 업무에선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하니 문제가 없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긴 할 것”이라고 했다.

3등 한 일반인,"인공지능 분석대로 답안 작성했는데, 놀랍다"

인공지능팀에 참여해 3등을 한 일반인 신모씨는 단연 화제였다. 그는 “물리학 전공이라 법은 전혀 모른다”면서 “주관식의 경우 인공지능이 분석해준 것을 적절히 짜깁기 해서 답안을 작성했는데 3등을 했다니 나도 놀랍다”고 했다. 이 사례는 앞으로 법률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일반인들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일상 생활에서 법률 관련 업무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대회에 사용된 계약서 분석 인공지능은 ㈜인텔리콘연구소(대표 임영익)가 개발했으며, 2019년 국제인공지능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딥 러닝, 자연어 처리, 기계 독해, 법률 추론 기술이 융합된 것으로 근로계약서를 독해해 상세한 해설을 제공한다. 대회 준비위원회는 “세계 최초의 노동법 인공지능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대회 준비위원회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법률 인공지능 세계를 널리 알리고 학술적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대회를 기획했다”면서 “단순하게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효용성과 생산성을 도모하는 협업 인공지능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일반인들이 매매계약 같은 법률 행위를 할 때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보완해야 하거나 누락된 내용 등을 미리 검토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이 변호사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분석에서는 인공지능이 빠르겠지만, 사건별 특수성을 감안한 구체적 판단에선 여전히 인간 변호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법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게 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매매계약서, 임대차계약서, 차용계약서 등 다른 계약서와 소송 관련 서류에도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개발되면 인공지능의 활용 범위와 효용성은 더욱 넓어지고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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