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Hurt kids hurt kids

폭력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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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자녀에게 심한 매질을 하고 밥을 굶기는 등 아동 학대 사건이 심심찮게 뉴스를 타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아이를 죽음에까지 몰고 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어떻게 자신의 자식을 죽음에 이르도록 폭력을 가할 수 있을까? ‘Hurt kids hurt kids’라는 말이 있다. 상처 받은 아이들이 또 아이들에게 상처를 가한다는 것인데, 어려서 가정 폭력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 또 자신의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어려서 폭력을 당했으면 그걸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지 할 텐데, 왜 자신도 그런 부모를 닮는 것일까?

권수영 교수는 자신의 책 <나쁜 감정은 나쁘지 않다>에서 자신이 미국 상담기관에 있을 때 상담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자꾸 어린 딸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는 싱글맘이 목사님의 권유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찬송가를 열심히 들었단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엄마가 헤드폰으로 찬송가를 듣고 있는데,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그 때 사태가 벌어졌다. 엄마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정확히 기억을 못하는데, 기억하는 것은 찬송가의 박자에 맞추어 어린 딸의 머리를 때리고 있었고, 아이는 거의 졸도 직전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러자 극도의 죄책감에 휩싸인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식칼로 자신의 손목을 내리쳤다. “넌 인간도 아니야! 손목을 아예 끊어버리겠어!”하면서... 겁에 질린 딸이 엄마를 말리니, 엄마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딸의 신고로 급히 출동한 경찰의 응급조치로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권교수가 상담을 해보니 엄마의 마음속에는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를 키우면서 딸아이의 행동이 종종 그 동안 가슴 속 깊숙이 꼭꼭 숨겨두었던 자신의 상처받은 어린 아이를 불러내려고 하여, 그때마다 분노 구급대가 출동한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있었던 날은 자신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던 어린 아이가 더욱 뚫고 나오려고 하여 분노의 전력을 더욱 높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행동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딸을 때리던 손목에 칼을 내리친 것이고... 원인을 진단한 권교수는 그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어린 시절,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지금 말한 것처럼 마음을 달래 주세요. 얘야! 넌 절대로 짐승이 아니야!”그러자 아이 엄마는 상담 시간 내내 폭풍 오열을 한다. 상담을 끝내고 나가는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마치 긴 꿈을 꾼 것 같아요!” 그렇다. 대부분 폭력부모의 속에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권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몸의 상처도 흉터를 남기듯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없애려고 한다고 없어지지 않으며, 없는 척 숨길 수도 없다. 다만 안전한 사람과 함께 그때를 기억하고 어루만질 때, 그 마음의 상처는 더 이상 숨겨질 필요가 없다. 그래야 상처가 다시 대물림되어 또 다시 자녀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주는 일을 멈출 수 있게 된다.”

내가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할 때 사건이 생각난다.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아니지만, 자기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했던 패륜아 사건이다. 그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매 맞고 자라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술주정뱅이는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처럼 술주정뱅이가 되어 행패를 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 돌아왔을 때 또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는 아버지를 보고 정신없이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어릴 때 저런 아버지에게 정신없이 얻어맞던 자신의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떠오르고, 어느덧 그런 아버지처럼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이성을 잃고 아버지를 마구 때린 것이다. 이제 늙어 힘이 빠진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끝내는 아들의 손에 숨을 거뒀다.

그 때 그 사건을 재판하면서 대물림되는 폭력에 몸서리쳐지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폭력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을까? 가장 좋기는 권교수와 같은 상담가를 만나 자신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어루만져주며, 그 어린아이를 밝은 세상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면, 화가 끓어오를 때 속으로 3초를 헤아려보는 것은 어떨까? ‘화’라는 것은 마음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격랑 같은 것이기에, 3초만 참아도 어느 정도 그 격랑은 가라앉는다. 틱낫한 스님은 화를 우는 아기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는 마치 우는 아기와 같다. 아기가 우는 것은 무엇인가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일 것이고, 그래서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우리는 화라는 아기의 어머니다. 의식적인 호흡을 실천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우리에게는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어머니의 에너지가 생긴다. 화를 품에 끌어안은 채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기가 이내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어릴 때 가정폭력에 시달린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의 속에는 저마다 나름대로 상처 입은 어린 아이가 있다고 한다.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내 안에는 어떤 상처 입은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에게 다정스레 이야기해주자. “그 동안 그렇게 웅크리고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니. 이제 밝은 세상으로 나와서 나와 같이 행복하게 걷지 않으련?”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