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자유'를 외치는 홍콩, '자유'를 내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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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07 15:33
수정 : 2019-08-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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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진보 좌파 일부, '자유' 뺀 그냥  '민주주의' 주장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안전·행복의 보루임을 홍콩 시위가 보여줘



두달째 대규모 시위···20개 직종 50만명 참여 총파업까지

두 달째 계속되는 홍콩의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자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의 진보 좌파 진영 일부 사람들은  중·고교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삭제하고 ‘민주주의’로 하자고 주장해왔다. 자유민주주의가 ‘힘센 자’ ‘가진 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등의 이유를 댔다. 그러나 홍콩 시위 사태는  자유민주주의야말로 평범한 시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는  체제임을 잘 보여준다.

홍콩에서는 지난 6월 초순부터 두 달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말 시작된 시위는 6월 9일 100만명, 6월 16일 200만명의 대규모 시위로 번졌고, 그 뒤에도 주말마다 수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으로 맞서고,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시위대의 테러까지 벌어진다. 급기야 8월5일에는 항공사, 지하철, 버스, 금융 등 20여개 업종에서 50만명이 참가한 총파업이 벌어져 홍콩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홍콩 시위의 발단은 홍콩 정부가 지난 3월 입법 예고한 ‘범죄인 인도 법(이른바 송환법)’ 개정안이다. 홍콩 정부는 미국, 영국 등 20개 국가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 본토를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송환)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려 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송환법 철폐를 요구하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송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국에 밉보인 사람은 누구든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송환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이 송환법에 공포감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다. 2015년 발생한 ‘퉁뤄완(영어명 코즈웨이베이) 서점 사건’이다. 홍콩 시내에 있는 이 서점은 중국에는 눈엣가시 같은 책을 많이 팔아 왔다. 이번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사생활을 파헤친 ‘시진핑과 그의 여섯 여인’이라는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서점 점장을 포함해 서점 관계자 5명이 2015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잇달아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다. 5명 중 3명은 각자 다른 이유로 중국을 방문했다가 실종됐고, 1명은 태국에 있는 아파트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갔다. 또 1명은 홍콩 서점에서 고객이 주문한 책을 가지러 고객과 함께 창고에 갔다가 사라졌다. 특히 중국에서 실종된 3명 중 1명은 중국계 스웨덴 국적으로 중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 직원 2명과 함께 저장성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가  사복 경찰 10여명에게 끌려갔다.

사건의 진상은 서점 점장이 실종 8개월만인 2016년 6월 홍콩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하면서 밝혀졌다. 그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중국 선전에 갔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저장성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수갑이 채워지고 눈가리개까지 씌워진 채였다고 한다. 그는 작은 방에 구금돼 책 저자와 구매 고객의 정보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몇 달간 같은 질문이 되풀이되는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범죄인 중국 송환법' 추진에 시민들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 공포감

이 사건은 홍콩 정부가 송환법 개정을 추진하자 홍콩 시민들의 공포감에 불을 지폈다. 시민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홍콩의 민주화 인사나 반(反) 중국 성향 인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자칫하면 중국으로 넘겨질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 이면에는 중국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한다. 중국에선 애매한 혐의로 영장도 없이 강제 연행되고,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채 장기간 구속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불신이다.

이제 홍콩 시민들은 신체의 자유를 넘어 언론, 표현의 자유와 경제 생활의 자유까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은 1997년 영국에서 중국에 반환된 이후 외교,국방은 중국 정부가 맡고, 입법,사법,행정은 홍콩이 자치권을 행사해 왔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간섭이 강화되면 홍콩이 점차 ‘중국화’돼 사법 자치권과 법치주의가 지켜지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파업에 거의 모든 분야 시민들이 참여한 것도 이런 우려의 반영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우려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들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가치들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잘 아는대로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원칙이다.

자유주의는 국가 권력이 개인 생활에 간섭하거나 개인 생활을 침해하려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는 원칙을 말한다. 국가는 법을 넘어 개인에게 간섭할 수 없고, 개인은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다는 게 자유주의 원칙이다. 법에 의하지 않고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법치주의를 전제로 한다. 우리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자유주의 원칙이 나와 있다. 신체의 자유를 비롯해 거주·이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통신·비밀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노조 활동의 자유 등 모든 분야에서의 자유가 규정돼 있다.

우리가 지금 일상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자유주의 원칙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신체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제12조①)’는 게 신체의 자유의 핵심 내용이다. 홍콩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이 신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신체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언제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지 모른다면 하루 하루를 공포와 불안감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신체의 자유는 일상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해주는 보루다.

대통령 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국, '자유'민주주의 덕분

우리는 다른 자유도 맘껏 누리고 있다.  누구나 정부 또는 회사 경영진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정규직 전환해라, 최저 임금 올리라고 요구하는 파업과 농성을 할 수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 개xx’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를 수 있고, 특정 종교를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자유주의 원칙 덕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좌파 진보 진영에선 이 ‘자유’민주주의를 못마땅해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1년 뒤인 2018년 5월 교육부는 2020년부터 사용할 중·고교 새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이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구성 요소 중 일부만 의미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진보 좌파 진영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보수 진보 진영 간 논란이 거세지자 2018년 7월 최종안 발표 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를 함께 쓰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앞서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다. 우리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다 더 분명히 표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부터 진보 좌파 진영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유민주주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선거나 투표의 자유 같은 정치적 자유, 그리고 법적 기회의 균등 같은 형식적 자유만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경쟁과 시장을 중시해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사회 낙오자를 양산한다는 주장도 편다. 반면 분배의 평등, 복지 같은 사회경제적, 실질적 자유는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결과의 평등, 분배의 평등 같은 사회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회민주주의 요소를 담으려면 ‘자유민주주의’ 대신 더 포괄적인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사유 재산과 자유 경쟁을 생명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에서 태어난 것은 맞는다. 그래서 자유의 개념도 국가의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였다. 국가는 국방과 치안유지 역할만 해야 한다는 ‘작은 정부’를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경쟁과 빈부 격차 심화로 여러 사회 문제가 등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큰 변화를 겪었다. 자유의 개념이 국가의 사회·경제적 지원을 받아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적극적’ 의미로 확대된 것이다. 국가가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대줘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주고,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해 돈 없는 사람도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게 그런 예다.

'자유' 뺀 '민주주의'···중국·북한식 민주주의도 좋다는 건가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모두 보장하고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개인 생활에 간섭하되,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사회경제 생활에 적극 개입해서 빈부 격차를 줄이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을 돕고, 가난한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수 있도록 복지를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가치를 포괄하는 국가로 바뀐 것이다.

우리 헌법도 그런 내용으로 돼 있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 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제119조①항)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면서 '국가는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와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②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진다'(34조②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우리 헌법의 지배원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밝혔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가 다 포함된다. 원래 사회민주주의는 사유(私有) 재산 제도를 공유(共有) 재산 제도로 바꾸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되 폭력 혁명이 아닌 선거라는 민주주의 방법으로 하자는 것이다. 공유 제도로 하면 개인 생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훨씬 강화된다. 국가가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결정해야 하기때문이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거나 박탈될 수밖에 없다. ‘평등’을 위해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유 재산 제도를 유지하면서 국가 관여를 통한 분배와 복지로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노동자·농민 등 인민의 뜻에 따라 독재를 하는 체제이다. 인민을 대표한다는 공산당 독재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라는 개념은 없다. 중국과 북한이 그 예이다.

이렇게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소중한 가치이다. ‘자유’가 빠진,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민주주의’로 바꿔도 그만인 개념이 아니다. 홍콩 시민들이 왜 그토록 몸부림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지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홍콩 시위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역사적 현장이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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