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수사권 조정이라는 아름다운 숲, 경찰이라는 아름답지 않은 나무

때로는 사안을 멀리서 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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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없는 약자는 선하고 권한을 가진 강자는 악할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있다. 이를 검·경 수사권적용 사안에 적용하면 약자인 경찰은 선하고, 권한을 가진 강자인 검찰은 악할 것으로 생각 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을 자주 접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 약자인 경찰에 호의적이지 않다. 변호사들이 경험하는 경찰은 오히려 검찰보다 부패·불성실·무능한 경향이 있다. 반면 검찰은 경찰보다 청렴·성실·유능한 경향이 있다. 이렇게 현실에서 검찰과 경찰을 경험한 변호사들은 약자인 경찰에 실망하고, 검찰이 적어도 통계적으로 더 합리적인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멀리에서 숲을 바라 보니 아름다웠다. 그래서 숲에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가 보였다. 나무에는 동물들의 더러운 배설물들과 시체, 징그러운 벌레들과 끔찍한 약육강식의 현장이 보였다. 가까이에서 본 나무는 머릿속에서 아름답게 관념된 추상의 자연이 아니라, 생물의 본성과 물리법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잔인하고 추한 현실에 불과했다. 나무를 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 ‘숲이 아름답다는 것은 거짓이다. 아름다움으로 위장된 숲에 다가가면 추하고 흉측한 나무라는 진실이 보인다.’ 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옳은 판단일까.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사안에서, 숲이 아닌 나무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나무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근로자는, 변화를 주장하는 약자를 자처하는 그들은 선한 약자가 아니야. 그들은 저급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에 불과해. 나는 숲의 진실을 알고 있어. 아름다운 숲을 말하는 사람들은 가까이에서 나무의 흉측함을 보지 못한 허황된 이상론자들에 불과해.’ 아름다운 숲을 만들자는 이상에 따라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대부분의 주장은, ‘나무를 가까이에서 본 현실주의자’들에게 공격받았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나무가 아름답지 않다는 비판은 부분적으로만 옳거나 일반화하기 어려운 단견인 경우가 많았다. 아름다운 숲의 이상을 추구하자는 판단이 장기적·거국적 관점에서 타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나무는 가까이에서 보면 대부분 아름답지 않다. 노예나 천민은 가까이에서 보면 ‘차라리 누군가의 소유임이 마땅한’ 수준의 저열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노예주나 귀족은 합리적이고 너그럽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가까이에서 보면, 적어도 일부분은 어리석고 잔인한 군중이 불합리한 이유로 교양 있고 합리적인 귀족들을 죽이는 광경이었을 수도 있다. 근로자들은, 보기에 따라서는 나태하면서 이기적인 비루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상당수 일수도 있다.

사회의 약자들은 대부분 유능함과 성실함, 인덕을 두루 갖추고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는 성자와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 약자들은 사실 자신이 강자였다면 지금의 강자보다도 더 악랄했을 사람들이 우연히 약자의 지위에 있었을 뿐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한 복합적인 관계속에서, 약자라는 나무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무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아름다운 숲을 꾸미자는 비전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이성과 당위의 숲을 만들기 위한 장기적 비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를 나무가 아름답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막아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묻기 위해 해양경찰을 해체했던 적이 있다. 물론 해양경찰 해체는 명목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조직의 잘못에 대해 조직의 권한과 위상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조직과 제도에 벌을 줄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초기 경찰의 잘못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경찰 제도에 벌을 주었고, 경찰의 권한이 축소되었다. 한 국회의원은 직설적으로 ‘검찰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은 검찰제도의 역사와 비교법적 사례를 고려했을 때 옳지 않으나,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 검찰에게 일시적으로 권한을 집중시키고, 이후 후손들이 형사소송법을 다시 개정하게 하자’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벌은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게 주어져야지, 조직과 제도와 체계에 주어져서는 안 된다. 제도의 모순은 제도에 벌을 주어서 해결해야 하지만, 구성원이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에는 구성원만 처벌해야 한다. 대부
분 국가의 판사나 검사들도 크고 작은 부패 문제를 겪었다. 그러나 법원이나 검찰 조직이 벌을 받은 적은 없다. 판검사의 부패는 대부분 제도의 모순에 따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검찰의 권한을 경찰에게 일부 내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경찰에게 권한을 더 주기보다는, 검찰이 과도한 권한을 가져서 생기는 문제를 감수하는 지금이 오히려 나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전의 기고에서 밝혔듯, 검·경 수사권 조정의 문제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문제처럼 두 집단간의 권한을 정교하게 배분한다고 하여 일시에 해결될 것이 아니다. 형사사법제도의 문제는 공공이 완전 독점할 당위성이 있는 영역으로 보기 어려운 수사와 기소의 영역을 공공이 완전 독점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판의 화살을 검찰에게만 돌리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헌국회가 일제강점기 경찰의 잘못에 벌을 주어서 생긴 문제를 다시 검찰에게 벌을 주어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나름의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는 기존의 형사사법체계의 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해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적어도, 경찰이 가까이에서 보면 부패하거나 무능한 경향을 가진다는 사실이, 올바른 형사사법제도라는 숲을 구축하는 계획의 주요한 반대근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숲이 아름다워도, 나무는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의도적으로 가까이에서 나무를 보지 말고, 멀리에서 숲을 봐야 한다.
 

[사진=김기원 변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