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여성 간음한 80대 남성, 대법 무죄 확정 "장애 인식 못해"

  • "피해자 성적자기결정권 유무가 항거불능 판단에 절대적 기준 아냐"
  • '장애 정도' 아닌 '종합적 상황' 근거로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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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3 16:02
수정 : 2022-11-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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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성폭력 피해자가 정신적 장애를 지닌 경우라도 종합적 상황을 판단해 가해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면 가해자에게 장애인 준간강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2심에서 정신적 장애를 해석한 내용에 대해선 바로 잡아 피해자의 장애 정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하더라도 가해자에게 ‘장애인 준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장애인 준강간)등 혐의로 기소된 A(81)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피해자 B(48·지적장애 3급)씨를 이듬해 2월 한 달 동안 다섯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범행 때마다 “우리 집에 가서 청소 좀 하자”는 말로 B씨를 집에 끌어 들여 범행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A씨에게 적용된 죄명은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준강간이다.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저지른 성폭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즉, B씨가 장애로 인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A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애인 대상 강간죄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 기본 형량으로, 일반 형법상 강간죄(3년 이상 유기징역)보다 처벌이 무겁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
 
반면 2심은 사건 당시 B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정신적 장애가 ‘오랫동안 일상·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을 뿐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점과 지적장애 3급은 지능지수 50~70으로 교육을 통한 재활이 가능하다는 점, ‘싫어하는 것’에 적극적인 거부 표현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함께 식사하는 등 유대관계도 존재했다고 봤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심의 해석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에서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음’이라 함은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주원인이 돼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인지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주변 상황·환경, 가해자의 행위 방식, 피해자의 인식·반응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기준도 재확인했다. ‘장애의 정도’만이 아니라 사건 당시의 조건 전반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 B씨의 상황에 관해서도 한글·숫자 개념이 부족하고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능력이 특히 낮다고 봤다.
 
대법원에 따르면 B씨는 세 번째 범행을 당한 뒤 인근 식당 주인을 찾아가 울면서 “또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식당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후에도 B씨는 A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대법원은 ‘정신적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곤란 상태’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두 사람의 평소 관계를 볼 때 A씨가 B씨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B씨를 만나면 심부름을 시키고 용돈이나 먹을 것을 주는 등 알고 지냈고, 집을 청소해달라며 데려가 성폭행한 뒤 먹을 것이나 돈을 준 사실을 알 수 있다”며 “A씨로서는 B씨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상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하급심의 혼란을 해소했다”며 “향후 유사 사건의 판단에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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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처벌법 제6조(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①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폭행이나 협박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 구강·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는 행위
2. 성기·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
③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8조(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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