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민노총 위원장 구속에 경찰 3000명이 동원돼야 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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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3 10:52
수정 : 2021-09-1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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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경찰이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 2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해 구속했다.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을 집행한 것이다. 구속영장 집행은 영장 발부 20일 만이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집행하면서 기동대 병력 3000명을 동원했다. 구속영장 집행이라는 통상적인 법 집행에 20일씩이나 걸리고 그것도 경찰 3000명을 투입하고서야 가능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민노총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번 사례는 정권이 특정 집단이나 세력과 밀착돼 있을 때 어떤 문제점이 나타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경찰은 양 위원장을 검거하기 위해 군사 작전 펴듯 했다. 서울경찰청은 당일 새벽 3시 30분쯤 일선 기동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이어 5시 28분쯤 민노총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경향신문 사옥 주위에 수사 인력 100여명과 41개 기동 부대 병력 등 총 3000명을 배치했다. 경찰 400명이 들어가 건물 출입구와 비상구, 옥상을 봉쇄하고 건물 안을 뒤져 14층에 있던 양 위원장을 검거했다.

일반인의 경우 구속영장 집행은 경찰관 몇 명이 한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그렇다. 그런데 민노총 위원장 한 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느라 군사작전 펴듯하는 난리를 쳤다. 전직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집행할 때도 이렇게까지 난리를 떨지 않는다. 경찰이 그 난리를 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민노총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몰려들어 경찰에 물리적 저항을 할 것이 예상돼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노조 단체에 불과한 민노총이 국가 공권력 행사에 집단적 저항을 하고 그래서 경찰은 통상적인 방식의 법 집행을 하지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이번 사례가 보여준다.

민노총 집단 저항 우려, 군사 작전 펴듯

앞서 경찰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양 위원장 구속영장을 집행하려고 했다. 경찰관 10여명이 구속영장 발부 5일 만인 8월 18일 구속영장을 들고 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사 사옥으로 영장을 집행하러 갔다. 민노총에 “구속영장을 집행하러 왔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민노총 측은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갖고 오지 않았다며 구속영장 집행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철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집행에 협조하거나 응할 생각, 의사가 없는 것 같다”며 “향후 법적 절차에 따라 다시 영장 집행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시 양 위원장은 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경찰이 구속영장을 들고 잡으러 왔는데 압수수색 영장 운운하며 거부할 엄두는 감히 내지 못할 것이다.

구속영장 집행은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형벌권을 행사하는 정당한 절차다. 누구도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하거나 이에 불응할 권리가 없다. 그런데 민노총은 그러지 않았다. 민노총은 구속영장 발부 후 언론 인터뷰에서 “강제 구인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조직적 결의를 모았다”며 “경찰이 영장 집행하러 오면 막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노총은 양 위원장 검거를 ‘민노총에 대한 전쟁 선포’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정당한 법 집행을 전쟁, 탄압이라고 했다. 자신들 행위는 사회정의를 위한 것이라서 설사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니 구속영장 집행에 불응하기로 조직적으로 결의하고 경찰이 집행하러 오면 막겠다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이다. 경찰이 구속영장 집행에 3000명이나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도 민노총의 이런 막무가내식 행동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크고 본질적인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정부여당이 민노총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이 민노총의 법 무시 행동을 초래한 중요한 요인이다. 똑같은 불법 집회인데도 민노총 집회와 다른 보수단체 집회를 보는 눈부터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보수단체가 주도한 8·15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앞두고는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서면 지시사항을 발표하고 “국민 안전 및 건강이 일부 교회로 인해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집회 다음 날에는 “국가 방역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했다. “국민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대단히 비상식적 행태”라며 “엄단하겠다”고 했다. 10월 3일 개천절에 집회를 열겠다고 한 보수 단체에는 “반사회적 범죄”라며 “우리 사회를 또다시 위험에 빠트린다면 어떤 관용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해 11월 당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에 출석해 광화문 집회 주최자 측을 가리켜 “살인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번에 민노총이 불법 집회를 예고했을 때는  자제 요청이나 경고를 하지 않았다. 집회가 끝난 사흘 뒤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 등 방역 지침을 위반하는 집단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만 했다. 보수단체 집회에 대해 ‘국가 방역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경고하고, ‘반사회적 범죄’ ‘살인자’라고 비난했던 말과는 비판의 강도나 엄정함이 훨씬 낮고 가볍다.

정권과 민노총 밀착이 '법 위의 존재' 민노총 만들어

경찰은 정권 분위기를 눈치 챈 듯 '알아서 기는' 식으로 행동했다. 민노총에 법을 집행하면서 엄정함과는 거리가 먼 자세로 일관했다. 우선 민노총 불법 집회가 벌어진 7월 3일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난 8월 3일에야 양 위원장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몰래 숨어서가 아니라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법을 위반한 행위가 벌어졌는데도 한 달이나 걸렸다. 경찰은 양 위원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양 위원장을 법원으로 강제 연행하지도 않았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은  구인(강제 연행을 의미) 영장을 발부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법원에 강제로 데려오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경찰은 양 위원장을 구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구인 영장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다. 양 위원장은 법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가 영장실질심사 시작 30분 전에 법원에 불출석 의견서를 냈다. 경찰 관계자는 “양 위원장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할 것으로 알고 무리하게 구인영장을 집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민노총 조합원들이 집단적으로 저항할 것이 예상돼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구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찰이 당사자의 집단적 반발이 우려된다고 정상적인 법 집행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민노총이 노동자 권익 향상과 정부 노동 정책 변화에 기여한 공로도 부정할 수 없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기업과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사회를 노동자 집단도 엇비슷한 힘을 갖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운동장이 민노총 쪽으로 너무 기울어진 게 문제다. 사회 세력 간 힘의 균형이 유지돼야 어느 한 세력이 독선 독주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민노총 쪽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민노총은 못하는 것이 없을 만큼 강력한 세력이 됐다. 

이런 현상은 민노총과 현 정권의 밀착 관계에서 빚어진 일이다. 민노총은 현 정부의 핵심 지지 세력 중 하나다.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 데는 민노총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 권리와 노동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민노총과 기본 노선도 같다. 정권 탄생에 큰 신세를 졌고 노선도 같으니 민노총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대할 수 없다. 민노총은 현 정권에 지지 대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정권과 민노총의 이런 밀착 관계가 민노총은 법 위에 군림하고 정권은 민노총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게 만들었다.

외국 정치 지도자 중 노조 정책을 정반대로 시행한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다.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루스벨트는 친노조 정책을 폈다. 노사관계법을 개정해 노동조합 설립, 노조의 단체 교섭권과 단체 협상권을 인정했다. 루스벨트 이전에는 노동자들이 장외에서 공허한 외침과 투쟁만 일삼았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노조 권리 강화 정책으로 노동자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합법적인 투쟁과 노동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반면에 대처는 노동 개혁에 ‘올인’했다. 불법 파업을 철저히 금지했다. 파업하려면 노조원 비밀 투표를 반드시 거치게 했고, 다른 분규 현장의 파업에 동조 파업하는 것을 금지했다. 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노조 가입 의무화 제도를 폐지하고 심지어 파업 현장의 피켓 수까지 제한했다. 가장 결정적인 조치는 광부 노조를 굴복시킨 일이다. 광부 노조는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영국에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세 가지 존재가 있다. 가톨릭 교회, 왕실 근위대, 광부노조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노조 폐해 개혁한 영국 대처 총리를 봐야

대처는 그런 광부 노조가 불법 파업을 일으키자 단호히 맞섰다. 적자 투성이 국영 탄광 20곳을 폐쇄하고 노동자 2만명을 해고했다. 탄광 지역에는 경찰을 대거 배치해 불법 파업을 막았다. 대처가 워낙 강하게 나오자 그의 소속 당인 보수당에서조차 적당히 타협하라고 했다. 그러나 대처는 물러서지 않았다. ”협상은 없다. 법이 노조의 주장에 굴복할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광부 노조는 정부와 1년간 대립하다 백기 항복하고 조건 없는 직장 복귀를 선언했다. 영국에서 노조가 정부와 대립했다가 굴복한 첫 사례였다.

루스벨트와 대처의 정책은 각기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1929년 대공황 발생으로 노동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처지가 열악했다. 이렇다 할 복지 제도도 없었다. 여기에다 루스벨트가 대통령 당선 전 하지 마비 장애를 겪으면서 약자들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된 것도 큰 요인이 됐다.

반대로 대처가 집권하기 전 영국에서는 노조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노동당이 친노조 정책을 펴면서 노조의 힘이 막강해졌다. 노조가 툭하면 파업을 하고 정부는 노조에 굴복해 “영국을 지배하는 게 정부냐, 노조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조 천국’이 영국을 병들게 하는 ‘영국병’의 주범으로 불렸다. 대처는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잡았고 노조 개혁에 나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노총 폐해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법 집회를 단속하는 공권력에 대해 '자영업자에게는 쇠몽둥이, 민노총에는 솜방망이'라는 자영업자들의 한탄이 나온다. 택배회사 대리점주가 민노총 택배 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진다. 정치 파업을 일삼는 민노총과는 다른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MZ세대의 새로운 노조가 등장하고도 있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는 루스벨트가 필요한가, 대처가 필요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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