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이슈] 남의 땅에 모신 내 조상묘... 이제는 돈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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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07 08:00
수정 : 2021-05-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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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 = 대법원 제공]

지난 2014년 10월 A씨는 경매를 통해 경기도에 있는 한 임야를 샀다. 이 임야에는 지난 1940년도에 사망한 B씨의 할아버지와 지난 1961년도에 사망한 B씨 아버지의 묘가 있었는데, B씨는 계속해서 이 묘들을 관리해왔다.

A씨는 이 임야를 매수한 이후 B씨에게 "내가 임야를 산 날부터 지금까지 내 땅에 있는 당신의 조상들 묘에 대한 토지 사용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B씨로부터 “나에게 분묘기지권이 있으므로 (토지 사용료를) 낼 필요 없다”고 반박했다.


여러차례 협의가 불발로 끝나자 참다 못한 A씨는 법원에 B씨를 상대로 “나에게 토지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분묘기지권이란 다른 사람 땅에 있는 분묘를 소유하기 위해 그 분묘의 기지(基地, 근거지)에 해당하는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관습법상(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 관습) 권리를 말한다.

대법원은 땅 주인의 승낙이 있는 경우는 물론 땅 주인의 허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땅에 누구나 알 수 있을 크기의 분묘를 설치한 후 20년 간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서 분묘를 관리하고 있었다면 분묘기지권을 시효 취득할 수 있다고 봤다(96다14036 판결). 땅 주인의 재산권 보호보다 당시 서민들이 분묘를 설치할 땅을 가질 수 없었던 경제적인 상황과 장묘 시설이 부족해 남의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현실(묘의 안정성)을 반영한 결과다.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시효 취득하는 경우 토지 사용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라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담당 1심 재판부가 “장사법 시행 이전에 남의 땅에 설치된 분묘도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다17292)과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은 땅 주인한테 토지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94다37912)을 따랐기 때문이다.

장사법이란 남의 땅에 허락 없이 묘지를 설치했다면 그 묘지 소유자에게 토지의 사용권이나 묘지 보존을 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것을 골자로 한 법으로 지난 2001년 1월 13일부터 시행됐다. 일각에서 “화장 비율이 높아지는 등 장묘 문화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제사에 대한 국민 의식도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묘기지권을 계속 인정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결과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법원과 달리 항소심 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는 경우 분묘기지권이 성립함과 동시에 분묘기지권자에게는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발생한다”는 대법원 판결(92다13936)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난달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권자에게)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하면, (분묘기지권자는) 그때부터 토지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지료청구소송(2017다228007)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분묘기지권자는 (땅 주인에게) 토지 사용료를 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94다37912)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한다”며 그동안 “분묘기지권자가 땅 주인에게 토지 사용료를 줘야하나”라는 쟁점을 두고 대법원이 내린 서로 판단 때문에 생긴 혼란에 종지부를 찍기도 하였다.

다만, 청구할 수 있는 토지 사용료의 범위를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료를 청구한 다음 날부터 계산하도록 제한했다. 이전의 사용료까지 무한정 소급해 청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분묘기지권자와 땅 주인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다.

만약 분묘기지권자에게 분묘를 설치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이후의 토지 사용료를 모두 내도록 한다면, 분묘기지권자는 긴 시간 동안 밀린 토지 사용료를 한 번에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지체해 분묘기지권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 위험성을 줄여주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긴 분묘기지권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토지소유자에게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사용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기택·김재형·이흥구 대법관은 “다른 사람의 토지에 땅 주인의 허락도 없이 분묘를 설치했다면 그 땅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동안 얻은 대가를 땅 주인에게 줘야 한다”며 “분묘를 설치한 때부터 토지 사용료가 발생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시효 취득은 목적물에 있던 법적인 의무를 떠안은 상태에서 이뤄지고, 시효취득의 효력은 점유를 개시한 시점으로 소급해서 발생한다는 법리에 따른 것이다.

한편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권자에게 토지 사용료를 청구하지도 않은 채 20년 이상 평온·공연하게 분묘 기지를 점유하도록 했다면, 토지 소유자가 묵시적으로 대가 없는 토지 사용을 인정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그에 따라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고 봐야한다"는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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