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미국도 정말 재판 전에 공소장을 공개할까?...'이성윤 공소장'이 촉발한 '피의사실공표' 논쟁

  • 이성윤 공소장에 기소 안된 '조국·박상기' 포함…피의사실공표죄 해당할 수 있어
  • 미국에는 대배심 제도 있어, 검찰 기소를 사전에 판단해
  •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정보 공개는 국정농단 때와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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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18 08:36
수정 : 2021-05-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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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차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 유출과 관련해 '피의사실공표' 논쟁이 재부상하고 있다. 이 지검장이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이 담긴 검찰의 공소장은 △이 지검장에 송달되기 전 △법무부에 보고되기 전 △국회에 정식 제출되기 전 검찰전산망을 통해 유출됐고, 13일 중앙일보 단독 기사로 세간에 공개됐다. 그러자 그간 검찰의 고질적 폐단으로 지적돼 온 '피의사실공표'가 또다시 재연됐다는 비판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7일 기자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기소된 피고인이라도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앞서 박 장관은 14일 공소장 불법 유출 의혹이 있다며 대검찰청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대검도 곧바로 감찰에 착수, 감찰부서 두곳과 정보부서가 협업해 진상을 규명하도록 했다.

이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17일 이 지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에 개입된 현직 검사로 추정되는 인물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사세행은 "수사기관이 공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후 공소장 사본이 피고인에게 송달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고의로 유포시키는 행위 역시 공무상 비밀의 누설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피해사실공표죄나 법무부의 ‘공개금지 훈령’이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이자 수사 자율권에 대한 침해’의 도구로 악용된다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어 향후 공방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성윤 공소장 공개는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의사실 공표죄(형법 126조)는 수사기관이나 그 구성원이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과정을 '기소 전에 외부에 공개'했을 때 성립하는 죄이다. 

따라서 공소장이 공개된 것은 피의사실공표죄에 적용되지 않는 사안은 아니다. 공소장이 있다는 것은 이미 기소가 됐다는 것인데, 기소가 되는 순간 '피의사실'이 아니라 '공소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의 진상조사 지시가 '수사팀에 대한 압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제는 이번 공소장으로 공개된 것이 '피고인'인 이 지검장만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공소제기는 물론 소환조사조차 받지 않았던 인물들의 피의사실이 줄줄줄 함께 유출됐다. 분량만 보더라도 이 지검장 보다는 다른 관련자(조국 前장관, 박상기 前장관, 윤대진 검사장, 이광철 비서관)들에 대한 것이 훨씬 많았는데, 공개의 목적이 이 지검장이라기 보다 다른 이들이 아니었는지 의심될 정도다. 

이와 관련해 조 前장관은 자신의 SNS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전면부인했다. 측근들에게는 "황당한 소설"이라고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이에 관한 조사를 받은 적도, 알지도 못한다'라는 입장도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기소되지도 않은 것은 물론 수사조차 하지 않은 수사기관의 의심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피의사실공표에 해당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재판 전 공소장을 공개할까?

지난해 2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국민 기본권과 형사사법 정의 지키려면 익숙한 관행도 고쳐야 한다”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공소장을 공개하라는 국회 요구를 거절했다. 추 전 장관은 당시 공판 전 기소 내용의 비공개 결정의 근거로 ‘미국도 공판기일이 돼서야 공소장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은 기소 즉시 공소장을 공개한다”며 반박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미국에서는 피의자가 기소됐을 경우 법원의 제동이 없는 한 공소장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한다’는 주장과 ‘왜 유독 한국에서만 검찰을 위축하려 하느냐’는 성토가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공판 전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주장은 표면적으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법 체계와 절차가 달라 단순한 비교는 쉽지 않다. .

미국은 한국과 달리 기소대배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지만 미국에선 중요사건의 경우 배심원들이 판단을 거쳐야 기소를 할 수 있다. 이를 대배심(大陪審)제도라고 한다. 기소 여부가 대배심에서 기소가 결정되면 이는 재판 전에도 외부에 공개될 수 있다. 기소결정을 시민들의 뜻에 맡겼다는 점에서, 한국과 단순비교는 어렵다.
 
피의사실공표죄 강화는 ‘내로남불’이다?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가장 큰 반발은 여권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검찰의 수사력을 이용하면서 자신들을 향한 권력 수사에 대해서는 어깃장을 놓는다는, ‘내로남불’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일각에서는 현재 여권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서는 박영수 전 특검의 수사 정보를 ‘국민 알권리’로 공개하자고 주장했으면서, 지금은 ‘인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수사 내용 공개를 막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두 개의 사안을 동일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피의사실공표죄’ 논란을 낳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언론보도가 검찰의 정보 유출에서 시작됐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언론의 보도에서 사태의 폭로가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국정농단의 사건이 언론이 이미 사실을 알고 이를 특검에 확인하는 경우였다면, 이는 검찰이 미공개 정보를 유출하는 것과는 차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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