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눌러죽어도 무죄... 경찰 살인 부추키는 美' 면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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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쉬게 해달라”... 흑인 조지 플로이드(46)는 자신의 목을 8분 넘게 짓누르던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소속 경찰 데릭 쇼빈(44)에게 절규했다. 그 절규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플로이드의 목을 짓누르던 쇼빈의 모습은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불러 일으켰다.

플로이드 유족의 의뢰로 부검에 참여한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검시관은 플로이드의 사인에 대해 “경찰관의 제압과 억압, 목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심폐 기능의 정지” 때문이라고 지난 1일(현지시간) 밝혔다.

데릭 쇼빈은 사건 직후 3급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 4일 사법 당국이 쇼빈의 혐의를 3급 살인에서 2급 살인으로 올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다른 경찰관 세 명도 살인 방조 혐의로 기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살인죄를 살인에 대한 계획성이나 고의성을 기준으로 분류해 처벌한다. 그런데 살인죄를 1급과 2급으로 분류해 처벌하는 미국 대다수 주와는 달리 미네소타주는 좀 더 가벼운 사안에 대해 적용하는 3급 살인죄를 따로 규정하고 있다.

3급 살인은 “다른 사람에게 상당한 위해를 가하고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누군가의 죽음을 촉발한 경우”에 적용된다.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25년 이하의 징역이나 4만 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징역형과 벌금형이 모두 선고될 수 있다. 반면 우발적 살인에 적용되는 2급 살인이 인정되면 최대 40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데릭 쇼빈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불과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쇼빈은 지난 19년간 경찰로 근무하면서 과잉진압으로 자주 논란을 빚기도 했으며 특히 플로이드 사건 외에도 두 차례 용의자를 총으로 쐈고 이 중 한 명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가운데 쇼빈이 실제 징계를 받은 것은 단 한차례 견책 처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왜 그럴까? 미국 경찰관이 처벌을 잘 받지 않는 이면에는 헌법상 권리로 보장된 공무원 면책권(qualified immunity)이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면책권이란 미국인의 경우 연방법에 따라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공무원을 고소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약 그 공무원이 '선의'로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라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때문에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더라도 선의를 증명하기만 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 권리는 '피어슨 vs 레이' 사건에서 최초로 명시되었다. 1961년 흑인 한 명이 포함된 목사 일행이 버스 정류장에 있던 백인 전용 대기실에 들어갔다. 당시 법에 따르면 흑인은 백인 전용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결과 피어슨 등 목사 일행은 경찰관 레이에게 체포 되었고, 피어슨은 곧장 레이를 상대로 “헌법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지난 1967년 연방 대법원은 "공무원이 선의로 인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면책권이 부여 된다"고 판결했다. 총기 소유가 허용되고 광대한 국토에 비해 공무원이 적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이 자신의 맡은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송을 당하는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후 지난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 원칙을 두고 “공무원이 직무상 행한 행동이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확히 수립된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그 공무원은 기소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해석도 내놨다.

하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이라는 부분보다 '명확히 수립된'이라는 부분에 무게를 두어 그동안 경찰 등 공무원이 과도한 면책권을 누릴 수 있는 근거로 쓰여 왔다.

실제 지금까지 과잉진압 의혹이 제기된 여러 경찰관이 이 판례를 들어 기소를 넘기거나 처벌을 면했다.

일례로 지난 2004년 경찰이 교통위반 범칙금 고지서에 서명을 거부한 임신 7개월 여성을 차량에서 끌어낸 뒤 테이저건(전기충격총)을 1분 안에 3차례나 쐈다. 심지어 이 같은 사건은 피해 여성의 11세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 이 여성은 테이저 건으로 자신을 쏜 경찰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경찰의 진압이 '명확히 수립된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또 지난 2013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선 경찰관들이 법원으로부터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를 받는 피의자 2명의 집을 수색하던 중 도박에 사용된 돈 20만 달러를 훔치는 바람에 피의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법원은 “경찰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이 없다”며 재판에 넘겨진 경찰에게 면죄부를 씌어주었다.

면책권은 지난 2014년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뉴욕의 흑인 남성 에릭 가너 사건에서도 논란이었다. 당시 경찰은 천식 환자였던 가너가 “숨을 못 쉬겠다”고 외쳤는데도 목조르기를 풀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법을 어겼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불기소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공무원 면책특권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의 폭력성과 이에 대해 면책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악순환을 반복시키는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 사건에 대해) 화나고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서 경찰에 의한 폭력과 과도한 공권력 행사 금지,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독립적 조사 등을 지난 1일(현지시간) 촉구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같은 날 델라웨어주 웰밍턴의 한 교회에서 지역 흑인 정치인, 종교인 등과 만나 “제도적 인종차별에 맞서겠다”고 말했다.

지난 1980년 플로리다주에서 오토바이 과속을 한 흑인 아서 맥더피를 집단 구타해 죽게 한 경찰 4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고, 1992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과속한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는 등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면책 특권이 대부분 흑인들을 상대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사람을 인구 100만 명당 비율로 따지면 흑인이 30명으로 백인(12명)보다 훨씬 많았다.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일한 오마 민주당 하원의원,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하며 공화당을 탈당한 무소속 저스틴 어마시 하원의원 등은 경찰의 면책권 폐지를 요구하는 법안을 이번 주 제출할 예정이다.

언론계 역시 한 목소리를 냈다. 뉴욕타임즈는 이날 사설을 통해 경찰의 무력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무력을 행사해야만 할 때는 그 이유를 대중에 공개하도록 해야 하며, 경찰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즈는 “(시위 현장에서) 노인들을 거칠게 밀치거나 아이들에게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물리적 충돌을 부추기며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경찰 자신”이라며 “미국에서 법 집행관의 실수로 목숨을 잃은 흑인의 이름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미국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생명권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예일대 로스쿨 강사인 앤드루 핀커스 변호사도 "공무원 면책권 문제는 본질적으로 법원이 (판례로) 만든 원칙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법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네소타주 경찰 당국은 “데릭 쇼빈의 목 누르기 진압은 개인의 일탈”이라는 공식 입장을 지난 2일 내놨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