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상황극’ 거짓말에 속아 실제로 성폭행…처벌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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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25 23:34
수정 : 2020-04-2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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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채팅 앱에서 ‘강간 상황극’을 유도한 사람과 이 거짓말에 속아 실제 성폭행을 한 남성 등이 기소되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남성 A씨는 불특정 다수와 무작위로 연결되는 ‘랜덤 채팅’ 앱에서 ‘35세 여성’으로 프로필을 꾸민 뒤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작성했다.

이 글에 관심을 보인 남성 B씨는 A씨와 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이어갔다. 이에 A씨는 원룸 주소를 하나 알려주며 자신이 그곳에 사는 것처럼 B씨를 속였으며, ‘강간 상황극’을 원한다고 B씨에게 말했다.

B씨는 곧바로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A씨가 알려준 세종시에 위치한 원룸을 찾아 갔고 주거에 침입하여 여성을 성폭행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은 전혀 ‘강간 상황극’을 요구하지 않았고, A씨 뿐만 아니라 B씨와도 일면식이 없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두 사람을 차례로 붙잡았다. 조사에서 A씨는 “허탕을 치게 해 (B씨를) 골탕 먹이려 했을 뿐 실제 성폭행 사건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반면에 B씨는 “A씨에게 장난 여부를 물었는데 A씨가 계속 믿게 했다. 속아서 이용당했을 뿐 누군가를 성폭행할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A씨에게 속아 성폭행을 직접 행한 B씨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의 주거침입강간죄가 성립할까

B씨는 자신이 피해 여성의 주거를 침입하여 강간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으나 피해 여성이 강간을 승낙하였기 때문에 합법적인 간음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B씨의 강간행위에 대하여 이를 승낙을 하면 합법적인 간음이 된다. 형법 제24조는 피해자의 승낙에 대한 규정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B씨는 A씨의 속임수에 의하여 피해 여성의 승낙이 있었다고 착오를 일으켰을 뿐 실제 피해 여성은 B씨의 강간행위를 허락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법조계에서는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 사실에 관한 착오’라고 일컫는다.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 사실에 관한 착오란 예를 들어 피해자의 승낙이 있어 위법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아님에도 피해자의 승낙이 있어 그 행위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착오를 일으켜 행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에 법원은 행위자가 그러한 상황이라고 오신한 데에 객관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위법성이 없다고 하여 무죄 판결을 하고 있다.(대법원 86도1406, 94도3191)

B씨는 채팅 앱을 통하여 여성이라고 속인 A씨의 말만 믿고 강간행위를 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피해 여성의 의사를 확인하는 등 사실 확인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B씨는 피해 여성이 승낙을 하였다고 믿는 것에 객관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의 주거침입강간죄가 성립하게 된다.

◇ A씨는 교사범으로 처벌받아

A씨는 B씨에게 강간행위를 하라고 지시하였는데 자신이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면 실제 범죄를 실행한 사람과 동일하게 처벌받게 된다. 이와 같은 행위를 한 사람을 교사범이라고 한다. 교사란 타인에게 특정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발생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며, 타인에게 특정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발생하게 하는 데에 적합한 행위라면 그 수단,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형법 제31조는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교사범의 처벌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랜덤채팅을 통하여 A씨가 B씨를 속여 B씨로 하여금 성폭행을 하게 만들었는데 만약 A씨가 B씨를 속이지 않았더라면 B씨는 성폭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A씨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B씨가 강간행위를 범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A씨는 자신은 그럴 줄 몰랐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주소를 알려주고 성폭행을 하라고 말했다면 교사범으로서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찰은 A씨를 주거침입강간 교사, B씨를 주거침입강간 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현재 A와 B씨는 서로 네 탓이라며 다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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