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청와대와 민주당은 법 위에 있나

  • 청와대는 '셀프 무죄' 판단 내리고
  • 민주당은 수사 책임자·사건 관계자 한자리 부르고
  • 울산시장·유재수 수사, 법치주의 근본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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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11 18:00
수정 : 2019-12-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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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와 민주당이 검찰 수사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청와대와 민주당에 법치 관념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수사에 대한 반응이 그렇다. 법치의 핵심은 법 앞의 평등과 법 절차의 존중이다. 범죄 수사에 대해서 말한다면 법에 정해진 수사기관이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사한 뒤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이 절차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게 법 앞의 평등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민주당은 ‘우리는 법 위반한 것 없다’고 스스로 무죄 판단을 내리거나’ ‘검찰이 뭔데 청와대를 압수수색 하느냐’고 법 절차와 법 앞의 평등을 부정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상적인 정치 공세야 늘 있어 온 일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수사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은 거의 없던 일이다.

김기현·유재수 의혹에 연일 "사실 아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 사건에 대해 보인 반응부터 보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이 김기현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자체적으로 수집했느냐, 단순히 외부에서 제보를 받았느냐이다. 또 하나는 청와대가 첩보 내용 그대로 경찰에 이첩했느냐, 내용을 가공해서 보냈느냐이다. 자체적으로 수집했다든지, 가공해서 보냈다면 사전 기획에 의한 하명 수사로 선거 개입에 해당할 수 있다. 선거에 미친 영향으로 보면 국정원 댓글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선출직인 자방자치단체장은 민정비서관실의 감찰 대상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비리를 수집했다면 불법 감찰에 해당할 소지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첩보를 입수했고 그걸 어떻게 경찰에 이첩했는지는 중요한 수사 대상이다.

이에 대해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정수석실은 첩보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고 의혹 제보를 단순히 경찰에 이첩만 했다”고 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자체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약간 말을 바꿨으나 본질은 노 실장 설명과 비슷했다. 고 대변인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외부에서 제보된 내용을 윗분들이 알아보기 좋게 일부 편집해서 요약 정리했다”며 “그러나 문건 정리 과정에서 새로 추가된 비위 사실은 없다”고 했다.

김기현 전 시장 사건 당시인 작년 1월 민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 2명이 울산에 간 일이 있다. 한 명은 경찰 출신 수사관이고 다른 한 명은 검찰 출신 수사관이다. 이들 중 검찰 수사관은 12월1일 사망했다. 이들이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러 울산에 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처음부터 깊이 관여했고 수사 상황을 챙겼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만큼 하명 수사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래서 검찰은 두 행정관이 울산에 왜 갔는지 중점 수사하고 있다.

그런데 고민정 대변인은 사망한 수사관과 함께 울산에 갔던 행정관의 청와대 내부 진술까지 공개하며 이들이 울산에 간 이유는 고래고기 사건 때문이지 울산시장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이 행정관이 “사망한 수사관이 울산에 간 것은 울산시장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 고래고기 사건에 대한 현장 대면 청취 때문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고 했다는 것이다. 고 대변인은 사망한 검찰 수사관이 울산지검의 소환 조사를 받기 직전인 지난 11월 21일 이 행정관에게 전화해서 했다는 말도 전했다.  “울산 지검에서 오라고 한다. 우리는 울산에 고래고기 때문에 간 것밖에 없는데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없던 일

하명 수사인지 아닌지는 1차적으로 검찰 수사에서 판가름난다.  만약 하명 수사가 아니라고 결론 나면 청와대는 의혹을 벗게 된다. 반대로 하명 수사로 결론 나서 관련자들이 기소되면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리게 된다. 사실의 진위는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가려질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핵심 쟁점에 대해 스스로 진위 판단을 내리며 ‘하명 수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검찰 수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수사 대상인 청와대가 ‘무죄’라고 주장하고 나선 격이다. 이게 바로 사법 절차를 무시하는 일이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아들이나 친인척, 정권 실세가 비리로 수사를 받았지만 지금처럼 청와대가 나서서 수사로 밝혀야 할 사항에 ‘이건 사실이고’ ‘저건 사실이 아니고’라고 진위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검토 결과 “사안이 품위 위반에 해당하는 가벼운 것이라 감찰을 중단하고 징계 조치하기로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은 누가 압력을 넣거나 청탁해서가 아니라 민정수석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체 판단인지 누군가의 압력이나 청탁 때문인지가 바로 이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이다. 압력이 있었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고, 청탁이 있었다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역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자체 판단’이라고, 즉 ‘법 위반은 없다’고 스스로 무죄 판단을 내리고 나온 것이다.

민주당은 ‘검찰 공정 수사 촉구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12월6일 대검찰청 차장, 경찰창 차장, 김기현 사건을 수사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김기현 의혹을 고발한 건설업자 등 4명을 불러 사건의 사실 여부를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정당의 하나다. 국회가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도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고 돼 있다. 국회도 그런데 하물며 정당이 수사기관 책임자와 사건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뭘 따져 보겠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식에도 어긋난다. 마치 원고와 피고를 불러놓고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나 같다. 이 역시 사법 절차를 무시하는 일이다.  민주당은 “검찰의 잘못된 시각을 조정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검찰의 시각이 잘못됐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검증하고 조정하겠다는 것인가. 민주당에 그럴 권한은 있는가. 4명은 모두 회의에 불참했다. 이들도 회의 참석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수사 관여는 법치주의 위반 

청와대든 민주당이든 진행되는 상황에 관해 어떤 입장을 밝힐 수는 있다. 야당 주장이나 언론 보도를 반박하고 해명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 공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입장 발표나 정치 공세가 사법 절차를 무시하거나 수사기관을 압박해 수사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받는 야당이라면 혹시 모른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 나라 최고 권력이다. 최고 권력이 누구로부터 탄압을 받겠는가. 누가 최고 권력을 상대로 법에 어긋난 수사를  할 수 있겠는가. 야당의 반발은 반발에 그치고 말지만, 청와대와 집권당의 한마디는 검찰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권에선 검찰이 과잉 수사, 정치 수사, 별건 수사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진행되는 수사가 과연 그런지는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사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다른 데도 아니고 청와대를 향해 과잉, 정치, 별건 수사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과잉 수사, 정치 수사, 별건 수사는 전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에서나 나온 말이었다. 현 정권을 향한 수사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한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 법치주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주당은 청와대의 김기현 전 시장 하명 수사 의혹에 대해 처음에는 “당이 낼 입장이 없다”며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상호 의원은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데 여당이 나서서 일을 키우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어떤 얘길 하면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해가 있다”며 발언을 자제했다. 이게 상식이고 합리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청와대와 민주당이 검찰을 공격하고 나섰다. 갑작스럽게 바뀐 그 배경이 궁금하다.

최고 권력자도 법 위에 있을 수 없어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법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치자가 법 위에 있으면 그 국가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통치자가 법 아래에 있으면 그 국가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 최고 권력자라도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했다. 최고 권력, 살아 있는 권력부터 법을 지키고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이고, 법치주의가 바로서야 나라가 번영한다는 게 두 철학자의 말이다.

지금 우리의 법치주의는 겨우 꿈틀거리고 있다.  이를 살아숨쉬게 하느냐 짓밟아 쓰러뜨리느냐는 이 나라 최고 권력인 청와대와 민주당에 달려 있다. 살아숨쉬게 하는 길은 다른 게 아니다. 청와대와 민주당도 법 아래에 있다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사법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다. 검찰을 압박해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말고 조용히 지켜본 뒤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려 노력했다는 평가만 받아도 이 정권의 큰 업적이 될 것이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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