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판사의 ‘회복적 사법’

  • 회복적 사법 시스템 논의...개별 법관 차원에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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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03 12:17
수정 : 2019-11-0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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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정준영 판사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 5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정 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실효적 준법감시체제를 마련하고 재벌체제의 폐해를 시정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부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지 고민해 달라고 말했다.

정 판사의 발언을 두고 “재벌총수 봐주기 위한 양형사유 제기가 우려스럽다”, “집행유예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 등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 판사가 재판 실무에서 회복적 사법을 구현하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 왔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여론도 많았다.

자식들과 동반자살하려다 살아난 어머니를 직권 보석으로 풀어준 뒤 변화된 삶을 지켜보고선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 빚 문제로 다투다 어머니를 죽게 한 딸에게 사회의 책임을 인정해 감형해 준 사건 등은 이미 유명하다.

회복적 사법이란 ‘처벌과 응보’를 중심으로 피고인의 형량을 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범죄과정에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화해와 조정’을 통하여 범죄로 야기된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회복적 사법을 형사사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소년법과 범죄피해자보호법 등에서 회복적 사법의 이념을 구현한 제도를 일부 도입했을 뿐이다. 2007년 소년법 개정을 통해 소년보호사건에서 화해권고제도가 도입됐고, 2010년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을 통해 기소 전 단계에서의 형사조정 제도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후 회복적 사법 시스템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답보상태이다. 개별 법관 단위의 노력만이 있었을 뿐이다.

2006년 양환승 당시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 판사는 지역사회의 범죄 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해 형사사건에서 처음으로 화해 중재를 시도했다고 한다.

김상준 변호사(58·사법연수원 15기)도 대표적이다. 법관 재직 당시 회복적 사법을 재판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2000년 처음으로 ‘치료조건부 보석’을 허용했다. 치료가 필요한 구속 피고인들에게 여러 차례 병원 치료를 전제로 보석을 허가했다. 엄한 처벌보다는 실질적 치료가 재범을 막는데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임수희 부장판사(49ㆍ사법연수원 32기)도 회복적 사법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형사사건을 조정을 통해 해결한다는 게 쉽지 않다. 처벌과 응보를 중심으로 하는 형사사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며 “독일, 중극, 오스트리아처럼 회복사법에 대한 논의와 제도 도입에 앞선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하면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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