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의뢰인의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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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택 변호사(법무법인 법승)
입력 : 2019-07-28 09:00
수정 : 2022-06-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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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는 속언처럼, 필자 또한 얼마 전 큰 일을 연달아 겪게 되었다. 암환자셨던 아버지가 예상치 못한 시기에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 하나였고, 이후 2주가 채 지나지 않을 무렵 친누나에게 ‘대동맥박리’라는 위험한 병이 발발하여 사망률 50%에 달하는 수술을 하게 된 것이 나머지 하나였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친누나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전전하며 3번의 수술을 하는 와중에도, 형사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던 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의뢰인들과 수사기관의 연락은 계속되었고, 재판은 기일을 연기할 수 밖에 없었으며, 사무소의 직원들과 동료변호사들에게는 업무를 과중시키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생사를 오가는 ‘친누나의 현재상태와 치료방향’에 대하여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대개가 그렇듯 나 또한 의료지식이 전무하였기에 그에 대한 해답은 담당의사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으나, 담당의사는 관리하고 있는 환자가 너무 많아 면담을 하는 것조차 굉장히 어려웠다. 어렵게 마주하더라도 자세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시간이 부족하여 명확한 대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병원기록/진단서 등을 토대로 최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으나, 환자마다 발병부위나 진행정도가 천차만별이었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담당의사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겠으나,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의 가족 입장에서는 내내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문득 의뢰인과 나와의 관계가 떠올랐다. 일생일대의 순간을 맞아 인생의 기로에 선 의뢰인과 변호인의 관계는, 심각한 병을 앓는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의 위치에 서니 의뢰인들의 심정이 더 실감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충분한 설명과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나의 판단만을 중시한 채 의뢰인의 생각을 듣고 이해시키는 측면에서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의뢰인들이 나의 세심하지 못한 행동과 태도들로 인해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끼진 않았을까?” 의뢰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내 행동에 대한 부족함이 드러나 이내 몹시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이도 친누나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병원생활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형사사건의 의뢰인은 수사기관으로부터 ‘무혐의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기쁨’도 잠시, ‘나는 과연 과정에 있어 의뢰인에게 옳게 행동하였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게 되었다.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실은 ‘진실’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실체적 진실’은 될 수 없듯이, 의뢰인에 대한 잘못된 행동과 태도 속에 얻은 결과는 ‘옳은 결과’라고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의뢰인들이 답답함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친절한 태도를 견지하리라 오늘도 다짐해본다.
 

[사진=박진택 변호사, 법무법인 법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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