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도시공원 일몰제, 꼼수 아닌 정도를 가라

  • 지자체, 예산 문제 타개 위해 꼼수 움직임
info
김재윤 변호사(법무법인 명경)
입력 : 2019-06-28 11:01
수정 : 2022-06-04 16:44
프린트
글자 크기 작게
글자 크기 크게
학창시절, 영원할 것 같던 방학이 끝나갈 때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밀린 방학숙제의 압박에 이런저런 꼼수를 떠올려봤지만, 도리는 없었다. 그간 허비했던 시간은 고스란히 부채로 돌아왔고, 씩씩거리며 숙제를 풀어야 하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최종시한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사유지를 매입하려는 지자체와 토지 소유주 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20년 전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지자체가 개인 소유 땅에 도로, 공원, 도시 등의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며 도시계획법 4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 지자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되도록 했는데, 이것이 도시공원 일몰제이다.

적용 시점인 2020년 7월 1일이 되면 서울, 경기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396.7㎢ 면적이 공원 용지로서의 효력을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원 기능을 유지하려는 지자체와 수십 년간 재산권을 침해당한 토지 소유주 간 이해관계가 본격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으로 부지매입을 위한 예산 마련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총 16조 5000억 원을 들여 '우선 관리지역' 130㎢를 매입하거나 용도를 제한해 공원을 실제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역시 주민이용률이 높거나 난개발이 우려되는 구역부터 우선적으로 보상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지자체가 예산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꼼수를 쓰려는 의혹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초구 소재 말죽거리 근린공원의 토지 소유주들은 “지자체가 임의로 구역을 나눠 주민의 통행이 이루어지는 바깥쪽 토지만 우선대상지역으로 선정해 매입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도로가 인접한 지역을 제외한 안쪽 토지를 이른 바 ‘맹지’로 만들어 땅값을 하락시킬 꼼수를 부린다는 것이다.

지자체는 공원 부지가 개인 토지 소유주들의 수익 수단으로 이용되어 난개발이 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공원으로 지정된 토지를 수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토지 수용방법은 지자체가 토지소유주와 협의를 통해 취득하거나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 수용재결을 거쳐야 한다. 소유주는 토지보상금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 지자체와 협의할 필요 없이 재결 절차를 거치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적정한 토지수용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지자체가 정도를 걷지 않으려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토지수용 비용 마련에 곤란을 겪는 점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는 국가의 밀린 방학숙제다. 20년 전에 주어진 숙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개학이 임박해서 꼼수를 써보려는 행태는 선진 행정국가에서 기대할 모습은 아니다.

20년 전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가재정투입의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라는 취지였다. 20
년이 넘도록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개인에게 다시 그 부담을 돌리는 것은 도시공원 일몰제의 제도 취지와도 배치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지원이나 지방채 발행 같은 대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잔인한 얘기지만, 영원할 것 같던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밀린 숙제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꼼수가 아닌 정도를 걷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간 허비했던 시간은 고스란히 부채가 되었고, 씩씩거리며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오롯이 국가의 몫이다.
 

[사진=김재윤 변호사, 법무법인 명경 제공]


 
후원계좌안내
입금은행 : 신한은행
예금주 : 주식회사 아주로앤피
계좌번호 : 140-013-521460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