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공동 대리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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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익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입력 : 2019-06-23 09:00
수정 : 2022-06-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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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본질은 ‘싸움’이다. 그런데 그 싸움에 있어서 당사자가 2명 이상인 경우가 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가 여럿인 소송에서는 원고가 수백명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원고는 한명인데, 한가 지 채권에 보증을 선 보증채무자가 여럿이거나, 손해배상채권과 관련한 보험회사가 있거나 공제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피고가 여럿인 경우도 있다.

필자는 그 중 피고로서 항소심을 의뢰한 2가지 사안에서 접하게 된 당사자의 주장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사안은 보증채무자의 사안이었다. 첫 번째 의뢰인 A는 X회사의 대표이사 명의만 빌려줘서 회사의 보증인이 되었다가 자신이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나서 자연스럽게 보증계약도 해지된 줄 알았는데, 보증계약관계가 남아있어서 보증인으로서 피고가 된 사례였다. 이 사례에서는 주채무자인 다른 대표이사가 알아서 진행하겠다며 의뢰인을 안심시키고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 변호사가 A 의뢰인까지 공동 대리하는 형태로 1심을 진행했는데 패소하였다.

두 번째 사안은 공제조합이 같이 피고가 되어있는 Y회사의 사안이었다. Y회사가 Z공제조합에 가입해 있었는데, 공사 도급인(원청)이 Y회사에게 공사 계약 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사대금 반환 및 지체상금을 구하면서 Z공제조합까지 피고로 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에서는 Y회사는 변호사 선임등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Z공제조합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공동으로 소송을 수행했다가 패소하였다.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사안이지만, 두 사건의 각 의뢰인이 하나같이 ‘1심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보증채무자인 A의뢰인은 1심에서 다른 피고인 X회사가 알아서 열심히 하는 줄 알고 소송에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하고, 공사계약 피고인 Y회사도 다른 피고인 Z공제조합이 워낙 공사계약과 관련된 소송의 경험이 많다고 하니 소송에서 제출되는 서면을 따로 검사하거나, 증거로 제출하게 하는 등의 실질적 관여를 안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법대 위의 법관들은 변호사까지 대리로 맡기면서 소송을 진행한 것을 두고서, 소송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변호사까지 선임된 사정이 있다면 소송의 내용을 파악하고 관여했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항소심에 와서 ‘1심 때는 제가 제대로 신경 못썼습니다’라고 주장하더라도, 판사로부터 ‘변호사도 선임되어 있던데 무슨 소리이신가요’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공동으로 피고가 되는 경우는 매우 많다. 채권을 청구하는 원고 입장에서는 어떻게든지 자신의 채권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채무자를 소송에 불러놓고 책임을 묻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증인, 공제조합, 보험회사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당연히 피고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공동으로 피고가 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변호사와 법무법인을 선임하고 창구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소송진행의 창구역할을 하여야 하면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채택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주로 소송을 담당하는 당사자외의 다른 당사자들은 자신의 입장이 서면에 반영되었는지를 사후에 제출된 서면을 통해서라도 점검하여야 하고, 자신이 확보한 증거가 ‘서증’으로 제출되었는지 아니면 ‘참고자료’로 제출되었는지 등 소송 전반에 관심을 계속 가져줄 필요는 있다. 자기는 단지 보증채무자이기 때문에 주채무자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생각이거나, 아니면 공제조합이 알아서 신경써줄 것으로 단정하고 다른 일에 신경쓰고 있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패소자가 될 수 있다.

2개의 사안의 1심 대리인이 불성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1심 대리인 입장에서는 자신과 소통하고 있는 의뢰인들의 주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고 여겼을 가능성도 있고, 그 의뢰인이 자신의 입장만 피력하다가 다른 공동 피고의 주장을 누락하거나 간과하였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당사자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고,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와 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항소심을 담당하는 변호사에게도 매우 버거운 일임은 분명하다. 소송은 고급진 ‘싸움’이다. 자신이 당사자로 되어 있는 ‘싸움’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느 누구에게 맡겨두고 방관해서는 안된다. 자기일이 아닌 것처럼 있다가 갑자기 날아오는 펀치에 KO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필자의 지난 ‘항소심에서 승부 보려면’에서 강조한 결론은 다시 언급될 수밖에 없다. 항소심을 잘해라가 아니라, ‘제1심에서 최선을 다하시라’는 것이다.
 

[사진=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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